신약 성경의 ‘첫 열매 ἀπαρχή’: 부활예수, 성령, 초대교회 교인

첫 열매ἀπαρχή (아파르케)에 대하여: 김범식 박사

신약성경에서 헬라어 ἀπαρχή (아파르케)가 9번 나온다. 그 중에 약 1:18과 계시록 14:4 외에는 전적으로 바울서신들에만 이 단어가 나타난다. 바울은 그만의 독특한 신학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의 서신인 로마서나 고린도 전서에서 ἀπαρχή (아파르케)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일관되게 첫 열매로 번역되고 있는데, 이것은 과일, 곡식의 첫 열매뿐만 아니라, 가축의 초태생, 사람의 맏이를 말하는 단어이다. 첫 열매가 나타내는 것은 율법의 제사에서 소산물의 첫 열매를 드리거나, 가축의 첫 새끼를 바치는 것을 말한다.

모세의 율법은 칠칠절, 즉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을 지킬 때, 밭에 씨를 뿌려서 거둔 곡식의 첫 열매를 바칠 것을 명한다(출 23:17, 34:22). 이때 첫 열매를 뜻하는 단어가 בִּכּוּרִים(비쿠림)이다. 이 단어를 구약 70인경은 대부분 πρωτογενήματα(프로토게네마타)라고 번역하는데, בִּכּוּרִים(비쿠림)은 단순히 곡식의 첫 열매 뿐만 아니라, 맏아들, 가축의 첫 새끼를 말한다(느 10:36). 그런데, 에스겔 44:30은 모든 종류의 첫 열매로서 בִּכּוּרִים(비쿠림)을 ἀπαρχή (아파르케)로 번역하고 있다. 모든 피조물의 첫 열매로서 아파르케ἀπαρχή가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단어는 곡식의 첫 소산물, 가축의 초태생을 의미하는 πρωτογενήματα(프로토게네마타), 사람의 맏아들을 의미하는 πρωτότοκος(프로토토코스, firstborn)보다 더 넓은 차원으로 동물, 식물, 사람을 포함하는 처음(beginning)을 지칭하는 말이다.

ἀπαρχή(아파르케)의 단어형태는 전치사 ἀπό (아포, ∼부터)와 ἀρχή(아르케, 시작)의 결합어인데, 말 그대로 ‘시작부터’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아파르케ἀπαρχή이다. 그래서 70인경(LXX)에서 ‘처음’ 혹은 ‘첫 열매’의 뜻을 가진 히브리어 רֵאשִׁית(레쉬트)를 번역할 때, 주로 아파르케ἀπαρχή를 사용하여 번역하였다(민 15:21, 18:12; 신 18:4; 대하 31:5).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와 헬라어가 똑같이 첫 열매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신학적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ἀπαρχή (아파르케)를 여러 곳에 사용한다. 로마서 11:16에서는 민 15:21을 인용하며, 곡식의 첫 열매 רֵאשִׁית(레쉬트)/ ἀπαρχή (아파르케)를 이스라엘 백성으로 간주한다. 첫 열매의 곡식 가루가 거룩하기에, 떡 덩어리로서 이방인들이 거룩하게 된 것이라고 비유한다. 유대인,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뿌리 같은 존재이고, 첫 열매 같은 존재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방인이 복음으로 얻게 된 은혜가 있다면, 첫 열매 같은 존재인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분명히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바울은 시간적 순서, 혹은 질적인 정도에 있어서 최초의 일, 최초의 사건을 말할 때, 이 단어 첫 열매ἀπαρχή를 사용한다. 고린도 교회의 스데바나 가정이 아가야 지방에서 처음 복음을 영접하고 믿음의 가정이 되었음을 강조하면서, 그 가정을 아가야의 첫 열매ἀπαρχή 라고 호칭한다(고전 16:15). 또한 바울은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에배네도에게 문안인사를 하라고 권면하며, 그를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ἀπαρχή라고 호칭한다(롬 16:5).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인 첫 회심자를 그 지역의 첫 열매임을 말하며, 마치 첫 열매를 바치는 제사와 헌신으로 비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첫 열매를 통해 감사를 표현하고, 나머지의 존재들도 그 첫 열매를 통해 기대하고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울은 죽었다가 살아난 예수 그리스도를 첫 열매ἀπαρχή라고 표현한다(고전 15:20, 23). 죽었지만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첫 열매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활의 첫 열매 예수처럼,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런 생명의 열매를 얻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선포한다.

첫 열매라는 표현을 통해 구현하는 바울의 신학적 진리에 영향을 받게 된 후기 문서인 야고보서 1:18에서는 진리의 말씀으로 존재하게 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피조물의 첫 열매ἀπαρχή 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첫 피조물을 뜻한다. 요한계시록 14:4에서는 믿음을 지키다가 박해와 고난 가운데에서도 어린 양 예수의 길을 따라간 성도들, 순교자들을 사람 가운데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드리는 첫 열매라고 칭송한다. 이것은 세상의 사람들이나, 혹은 유혹 가운데 넘어진 교인들과 다르게, 질적으로 특별한 성도를 칭하는 말이다. 그들은 첫 열매 같은 순교의 헌신을 하였고,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선물(gift), 혹은 출생증(birth-certificate)이라는 고전 헬라어의 세속적인 뜻으로 ἀπαρχή(아파르케)를 한 번 사용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첫 열매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선포한다(롬 8:23). 여기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고, 성령의 존재는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의 출생증ἀπαρχή(아파르케)임을 강조하기 위해,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의 제사 제도에 쓰인 첫 열매ἀπαρχή(아파르케)를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역사의 신학적 진리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장 바울적인 단어가 이 ἀπαρχή(아파르케)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ἀπαρχή이고,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명하는 출생증명서ἀπαρχή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새 창조의 첫 피조물ἀπαρχή이다. 첫 열매는 생명과 부활을 나타내고, 헌신과 거룩함을 요구하며, 새로운 삶과 신앙의 정조를 기대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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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성경의 첫열매: 부활하신 예수님(고린도전서 15:20, 23),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로마서 8:23), 초대교회 교인들(고린도전서 16:15, 로마서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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