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왔으니(심판에 대하여), 회개하고(죄에 대하여) 복음을 믿으라(의에 대하여)”고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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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성령님께서 3가지를 깨닫게 해주신다:
1. “죄의 대하여”: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이 죄다)라는 것
2. “의에 대하여”: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예수님께서 부활 승천 하시어 아버지께로 갔다는 것은 저부가 아니고 예수님이 옳았다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더이상 보지 못하더라도 성령님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예수님의 의(예수님이 옳았다)는 것
3. “심판에 대하여”: 사탄의 나라가 십자가에서 심판 받았다(하나님의 나라가 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실 것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세상 임금인 사탄이 심판받았다는 것): 믿는 자들이 구원 받았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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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왔으니(심판에 대하여), 회개하고(죄에 대하여) 복음을 믿으라(의에 대하여)”고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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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1-15): 2023-06-18 우인택 목사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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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보혜사 성령’ 두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5월 21일에, 14장에서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라는 제목으로 보혜사가 누구시며,
우리에게 어떠한 분인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6월 4일에, 15장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었는데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버려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를 그의 이름 ‘임마누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시기 위해 이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에덴동산에서의 임마누엘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모세’를 통해 율법과 성전으로 두 번째 임마누엘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마저 타락하여 더이상 임마누엘이 가능해지지 않자,
마지막 방법으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영원한 임마누엘의 은혜의 길을 여신 것이 십자가 사건이고,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시고 예수님을 대신할 예수님과 똑같은 또 다른 보혜사를 이 땅에 보내셔서
임마누엘을 지속하게 하신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임마누엘의 초청장’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은 임마누엘되시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7절에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성령 강림에 대하여 강조하신 까닭은 성령께서 강림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완성되었다는 것이고,
또,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오실 성령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있는 예수님과는 달리 ‘영’이시기에 공간을 초월해서 보혜사의 역할을 감당하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예수님의 기적에는 모두 공간적인 제약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병을 치유받고, 은혜의 말씀을 들으려면 모두 다 예외없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영이시기에 한국에, 미국에, 중국에, 온 세상에 동시에 계실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앞에 나아온 사람들만 도울 수 있었지만, 성령님은 공간의 제약이 없이 수많은 사람의 기도를 청종할 수 있고,
또 동시에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있는 것보다 성령께서 오시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그러시면서 8절에,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함께 읽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보통 ‘책망’이라는 말은 ‘잘못을 꾸짖거나 나무라며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에서의 책망은 헬라어 ‘엘렝크세이 ελεγξει’를 번역한 것으로 ‘책망하다, 꾸짖다’라는 뜻과 더불어
‘잘못된 것을 깨닫게 하여 바로 잡는다’라고 하는 좀 더 넓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분이 오시면 죄와 정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잘못된 것을 깨닫게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바른 길로 돌이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직접적으로 성취되었는데,
그것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마가의 다락방에서 숨어서 기도하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난 뒤에
뛰쳐나와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사건’입니다.
제자들은 본래 비겁한 자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안일을 위해 예수님을 배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시니까 비겁함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사람들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첫 번째로 증언한 것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 진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진정한 십자가란 다름이 아니라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님의 뜻을 깨달아
전하는 삶이라고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3. 계속해서 예수님은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의 본질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1) 첫 번째는 9절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여기에서의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을 통칭합니다.
예수께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큰 사랑을 베푸시고,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보일 수 없는 기적을 나타내 보이시고,
율법에 대한 놀라운 교훈을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덮기 위해 예수님을 이단으로 몰아세워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2절 말씀처럼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죽일 자를 죽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50일 후,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신 후에 그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예수님을 죽인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마음에 찔림을 받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통회하며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3천명이나 세례를 받고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니까, 죄에 대하여 그토록 무뎠던 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도 잘 알듯이 실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미혹을 받은 로마 군인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신앙고백에 “본디오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역사하시자 그들은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나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고 생각하고 회개한 것입니다.
“내 탓이요”,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2천 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내가 십자가에 못 박았고,
그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도 성령께서 제 죄를 깨닫게 하셨을 때, 몇 시간을 뒹굴면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엉엉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엔 죄가 아니었던 것이 죄로 여겨졌고, 이전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죄인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은 성령님이십니다.
오늘, 죄를 깨닫게 하는 성령님을 영접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성령님의 사역, 두 번째는 10절입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죄를 깨닫고 나면, 성령님은 의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한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는
예수께서 ‘의의 근원’이심을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께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가르쳐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정당한 유죄 판결을 받고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율법의 ‘의’를 자랑합니다.
그들이 이처럼 아직도 예수께서 의의 근원이심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오늘 본문 12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의는 성령께서 증거하지 않으시면
그들이 비록 선민이라고 할지라도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의를 알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충만 받은 베드로는 사도행전 4:12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예수님께서 천하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의를 가지신 유일한 분이심을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깨닫게 하시고 확신하게 하신 것입니다.
한자 의로울 의(義)도 나 아(我) 위에 양 양(羊) 자를 붙여서 만든 글자입니다.
‘내 머리 위에 양을 올려놓는 것이 의’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의는 내가 의로워지려 노력한다고 의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 대신 양이 바쳐져야 의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 기독교의 ‘칭의’와 같습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사람은 어린 양되신 예수님을 믿어야만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세상의 의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어린 양으로 제물되신 완전한 의이신 예수님을 따라 살도록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시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의를 깨닫고 믿게 하시는 성령님을 더욱 깊이 사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성령님의 사역, 세 번째는 11절입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신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죄와 사망의 근원인 ‘사탄’을 이긴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께서 이것을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사탄의 권세인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그리고 장차 맞이해야 할 마지막 심판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고,
그 심판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성도들은 이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그저, 날마다 작은 유혹에 흔들리고,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인데도 믿음과 자신 이익을 줄다리기하고,
예수를 믿는데도 삶이 힘겹고, 말씀을 지키는 것을 매우 부담스럽게 여깁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조차 힘들어 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성령의 사역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로서 마땅히 살아야 될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관심들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주시기만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는 욕심을 부려야 할 것에 욕심부리지 못하고,
오히려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할 욕심이 가득 차 있습니다.
죄로 인해 왜곡된 소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복을 주시면 하나님을 버리고 더욱 타락의 길에 빠져들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기에 복을 주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누가복음 11:13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시킬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항상 좋은 것, 귀한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주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에 감사가 없고, 만족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것에 대하여 욕심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한 것이 귀한 줄 아는 분별력이 부족해 자신에게 해로운 것, 하찮은 것을 매일 구하면서 그것을 안 주신다고 그것 때문에 불평 불만합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안 들어 주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줄 모르겠어.”
여러분, 어린아이에게 만원짜리 지폐와 백만원 수표를 주면 어느 것을 더 좋아할까요?
아마도 만원짜리 지폐를 선택할 겁니다.
왜죠? 수표의 값어치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늘 만원짜리 지폐의 위력만을 보았기 때문에, 만원이 있으면 과자를 다 살 수 있으니까, 만원이 최고인줄 압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백만원 수표가 만원의 백배의 위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린아이는 그걸 모르는 겁니다.
만일, 주었던 만원을 빼앗고 백만원 수표를 주면 울 겁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하는 말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쁨이나 행복감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감사함과 행복감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백만원 수표보다 만원짜리 지폐를 좋아하는 어린아이처럼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들이 하찮은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성경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가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잘못된 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 인줄 모르고 그것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사망의 골짜기로 몰아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셔서 귀한 것과 하찮은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그릇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내 가족, 친구, 교회를 위해서도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서 귀한 것과 하찮은 것을 구별할 줄 알고, 욕심을 부리더라도 귀한 것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자신에게 항상 귀한 것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게 되고 날마다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감사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적으로 미숙하고 분별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고,
또, 이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감사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는 것, 정말 스스로의 힘으로는 귀한 것을 구별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요 모든 근심과 걱정과 불만족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이 “열쇠” 곧 영적인 분별력이 키우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서 하찮은 것 안 주신다고 불만하는 지금의 삶을 내려놓고,
이제부터는 배부르든지, 배고프던지, 가난하든지, 부자이든지, 어떠한 처지에 있더라도 자족하는 능력을 키우는, 사도 바울처럼
“내가 주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백하는 성령충만한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님을 마음에 모셔들이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셔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고,
먼저 내가 변화되고,
그와 더불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죄와 정의의 기준이 그릇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 증거하여
그것을 바로 잡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성령 충만 받아서 귀한 것과 하찮은 것을 구별할 줄 알게 하시고,
귀한 것에 삶을 헌신하는 지혜로운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