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거역하는 죄와 인자(예수)를 거역하는 죄: 예를 들어서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했다가 회개하고 주로 믿었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와 예수를 거역하는 죄: 예를 들어서 사도베드로는 처음엔 예수를 부인하였지만 나중에는 사도가 되었다

성경에 대한 질문의 답은 성경 안에 있다고 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직접 모든 질문에 대한 정답을 설명해 주셨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30절)가 바로 그것이다. 사하심을 못 받는 죄는 예수와 함께 하지 아니하여 반대하는 자다. 모든 죄 중에 유일하게 예수를 믿지 않는 죄만 하나님의 사하심을 결코 얻지 못한다.

거기다 더욱 큰 벌을 받을 죄는 함께 모으지 아니하고 헤치는 자다. “헤치는” 것이 성령의 사역을 방해한다는 단순한 뜻이 아니다. 사람들을 모으는 것(collect)의 반대 즉, 흩어지게 만드는(scatter) 것이다. 혼자 예수 안 믿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 믿으려는 자들을 믿지 못하게 적극적으로 훼방 놓는 것이다. 유대 무리들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인정했는데 사탄의 종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렸고 앞으로 그를 추종하면 같은 편으로 취급하겠다고 한 짓이다. 자기들 밥그릇을 지키려고 적극적으로 예수 못 믿게 만드는 죄다.

성령의 가장 첫 째 가는 역할이 무엇인가? 방언이나 신유의 은사를 일으키는 것인가? 아니다. 한 죄인을 거듭나게 해서 예수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 자는 예수를 저주할 자라고 말하지 못한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시라 고백할 수 없다.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 당신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도록 하나님이신 또 다른, 서로 다른(different)의 의미가 아닌 똑 같지만 다른(another), 보혜사를 보내주신 것이다. 악령은 성령의 정반대다. 악령이 하는 첫 째 가는 역할도 당연히 어떻게 하든 불신자로 예수를 못 믿게 하고, 이왕에 믿는 자는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풀어야 할 질문은 사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말로 인자를 거역하는 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뜻을 풀 수 있는 열쇠도 예수님이 이미 말씀해 주셨다. 좋은 실과가 열리면 나무도 좋다고 말하라고 했다. 쉽게 말해 사과 열매가 열리면 사과나무이지 절대 배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대 무리는 성령의 권능이 아니고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이적이 일어났으므로 그 이적을 일으킨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인정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사과가 열린 나무를 보고도 배나무라고 우겼다.

만약 예수님이 신적 권능이 드러나지 않는 인간적 행위를 한 것을 두고, 예컨대 음식 먹기 전에 손을 씻지 않는다거나 죄인들과 교제하며 술을 마신다고, 비난한 것은 괜찮다는 것이다. 인간의 일상적 일을 보고 그 인간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또 할례나 안식일에 관한 율법을 달리 해석한 것을 두고 비평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예수를 인간 랍비로만 보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 단 그 말을 하는 자의 나무도 반드시 실과와 같아야 한다. 순수하게 유대사회의 좋은 관습과 율법을 지키려고 예수를 말로 거역했다면 사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말이다. 본문이 바리새인들에게 직접 해당된다고 해서 안심하기는 이르다. 서두에서 간혹 목사들이 자신이 세운 사역 방침을 따르지 않는다고 성령을 훼방한다고 야단친다고 했다. 그 의도는 자신의 잘못 유무는 제쳐두고 무조건 목사를 따르라는 것이다. 교인들로 예수님의 제자로 양육시키기보다는 자기 수하에 묶여 두려는 의도다. 교회의 교인 숫자만 늘리려는, 다른 말로 밥그릇을 지키려, 성경을 잘못 가르치고 성도를 오도하는 셈이 된다.

바꿔 말해 목사들이 신자들을 겁주려고 성경 말씀을 자기 의도하는 바에 맞추어 악용한 것이다.
영의 양식을 먹이고 가르쳐 자라게 만들어야 할 회중들에게 성경의 깊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방해한 것이다.
어쩌면 예수님으로부터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봉사가 봉사를 인도하면 함께 구덩이에 빠트리게 된다고 유독 바리새인들만 그렇게 야단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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