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의 무기력함,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은 표시는 것이 “금식”이라면,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은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함. 그러므로 금식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병도 낫게 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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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11. 금식, 새 옷, 새 부대 그리고 찢어짐 (누가 5:25~39) -김성수 목사-
금식, 새 옷, 새 부대, 묵은 것 그리고 찢어짐 부제는 신랑을 빼앗긴 자여 금식하라 입니다.
누가복음 5장 27절부터 39절까지에 말씀 함께 봉독하시죠.
27.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28.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29.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30.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32.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33.저희가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
35.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37.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38.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오늘 여러분이 잘 이해하시면요, 그동안 들으셨던 어려운 설교들을 다 이해하실 수 있어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성경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도 자주 인용을 해다가 쓰는 아주 유명한 비유예요. 사람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때나 구 정권이 물러가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을 때 혹은 신출래기의 선거 유세 등에 새 술은 새부대에 라는 구호를 자주 인용해다가 쓰곤 합니다.
전혀 잘못된 인용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술과 새 부대 생배 조각과 헌 옷의 비유는
그보다 훨씬 웅숭깊은 십자가 복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비유예요.
제가 이걸 예수님의 족보까지 끌고 갈 거거든요. 그러니까 중간에 놓치시면 안 됩니다.
오늘도 다루어야 할 내용이 많기 때문에 거두절미하고 성경 본문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 누구인가부터 살펴봐야 되겠죠.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예수님의 제자인 세리 레위가 등장해요. 레위는 누구죠? 마태예요. 마태복음을 쓴 마태 레위의 집에 들어가셔서 식사를 하시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나와요.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방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나오죠. 그런데 같은 비유가 적혀 있는 마태복음으로 가면 비방하는 무리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아니라 세례요한의 제자들이라고 나와요. 자 볼까요.
마태복음 9장 14절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그렇죠.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방하고 있는 이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롯하여
세례요한의 제자들까지 다 포함된 거예요. 바리새인들은 그렇다치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 편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이렇게 공개석상에서 예수님을 비방하고 나섰을까요.
하나님은 지금 묵은 것을 좋아하는 죄인들의 속성을 폭로하고 계신 거예요.
거기에서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일지라도 자유로울 수가 없더라라는 걸 보여주시는 거예요.
심지어 세례요한까지도 감옥에 갇혀있는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면서 ‘오실 그이가 정말 당신입니까?’라고 물어봤을 정도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던 세례 요한은 구약적 세계관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게 뭐예요? 금식이잖아요. 금식 왜 우리는 금식일에 금식하는데 너희는 먹고 마시냐 그것도 세리의 집에서 이게 문제에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에는 일 년에 단 한번 대 속죄일에 금식을 하라라는 규례가 기록이 되어 있어요.
그리고 율법에서 또 다른 날 금식하라라는 말이 없어요. 율법에 기록된 금식은 딱 하루에요.
일 년에 한번 대 속죄일 레위기 23장에 나오죠.
금식이라는 것은요. 인간의 육신에 에너지 공급을 중단을 하는 거죠. 그건 곧 육의 죽음을 상징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에너지, 곡기를 끊으면 인간은 죽어요. 그런데 그걸 끊어라라는 건 육신의 죽음을 상징하는 거예요. 육의 죽음.
따라서 금식이라는 건 인간이 자신들의 처음자리 인간의 처음자리가 어디죠? 죽은 흙의 자리잖아요. 그걸 또 다른 말로 어머니 자궁안에서의 자리라 그래요. 왜냐면 어머니 자궁안에 있는 존재는요 태아는 어머니로부터 그 생명선이 끊어지면 죽잖아요. 죽은 흙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으로부터 생기가 불어넣어지지 않으면 생령이 될 수 없어요. 그게 자체가 죽은 거예요.
움직인다 할지라도 그래서 짐승은 죽은 거예요. 죽은 흙이에요. 그냥 네페시에요.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인간은 하이 네페시 하야 살아있는 영, 생령인 거예요. 그 이외에는 다 죽은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금식이라는 건 인간이 자신들의 처음자리, 즉 죽은 흙의 자리를 직시하고 수긍하는 거예요.
쉬운 말로 인간 존재의 무력함과 불가능함을 스스로 인정을 하고 나는 죽은 자입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행위가 금식이었어요.
대속죄일의 금식은 그렇게 하나님의 죄 사함의 은혜 앞에서 인간은 죽은 자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하고 그 죄 사함 구원에 있어서 인간은 그 어떤 것도 기여할 수 없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
그게 자기부인이잖아요. 그게 죽은 흙임을 인정하는 거예요.
구원에 있어서의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거 …그걸 인정하고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를 그냥 꼭 붙드는, 은혜를 붙드는 수밖에 없다라는 거죠. 내 측에서는 그 어떤 방법도 내놓을 수 없다라는 거예요.
그 은혜를 붙드는 순종과 자기부인의 행위로 요구되는 거였어요. 그게 금식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내기 위해 밥을 굶어 버리는 거, 하나님 협박하는 거, 굶어서 땡깡 부리는 거, 이게 금식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 금식은 성경에 없어요. 그러니까 함부로 밥 굶고 그러지 말아요. 헛것 봐요. 자 그러한 구약의 금식에 관한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공부하고 싶은 분들은 창세기 44장 강해 ‘이유 있는 모함’이라는 설교에서 제가 자세하게 설명해 놨으니까 그거를 참조하세요.
자 금식이 그러한 것인데 인간들이 기특하게도 일 년에 한 번만 하면 되는 금식을 자기들 마음대로 계속 늘려갔어요.
스가랴서에 보면은 유대인들이 4월 5월 7월 10월에 어떤 특별한 날을 정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금식을 하고 있었던 기록이 나와 있어요. 그건 하나님이 시킨 게 아니라 인간들이 스스로 늘려간 거였어요.
그게 계속 늘어나다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롯한 유대인들 심지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의 제자들까지도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이틀 일주일에 두 번 금식을 했어요.
그건 율법도 아니었어요. 그냥 장로들의 유전이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일 년에 한 번만 하라고 요구하신 금식을 그들 스스로 매주 두 번으로 늘려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려고 한 거예요.
기특한 일입니까? 성경은 그걸 죄라 그래요.
문제는 그들이 금식을 통해서 자신들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필연성을 깨달은 게 아니라,
그것으로 자신들의 경건함을 자랑했고 오히려 자기들의 가능성을 보인 거란 말입니다.
경건함을 자랑했고 이방인들과의 구별됨과 차이성을 드러냈어요.
쟤네는 안 하는데 우리는 합니다라는 이런 구별됨과 차이성을 드러내는데 썼단 말이에요. 금식을.
그건 밥은 굶기는 굶는데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모양으로,
대척점에서 밥을 굶은 거예요.
그런 금식은 하나님이 카운트도 안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 혼난다 말입니다.
그런 금식은 나를 드러내고 내가 원하는 걸 얻어내기 위해 하는 그런 금식은 이방 선지자들이 하는 금식이었어요.
갈멜산 위에서 이방 선지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신을 협박합니까? 자해를 해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들을 얻어내려고 하잖아요.
금식이 내가 밥을 굶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원하는 걸 얻어내려고 하는 그런 용도로 쓰인다면 그게 이방인들이 하는 거란 말입니다 .
그게 죄에요
그렇게 우리가 밥을 굶는다고 하나님이 어이구 내 새끼 그래 밥 먹어 너 밥 굶으면 내 가슴이 아프다 뭘 원해 이렇게 들어준다면 그렇게 수시로 하나님의 보좌가 우리가 밥을 굶는 것으로 흔들린다면 그게 무슨 하나님입니까? 아무 계획도 없이 우리의 땡깡에 의해서 자기의 계획을 수시로 바꾸는 그러한 하나님 그러한 하나님을 믿으시겠어요? 그런 금식은 없어요.
하나님은 나의 속죄, 은혜 앞에서 너희들의 처음자리를 확인하고 너희들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을 인정하여 자기를 부인하라 내가 너희들을 지금 대 속죄일에 이스라엘의 대 속죄일은 죄가 속해지는 날이었잖아요.
대 속죄일에 속죄를 해주는데 그건 너희들이 밥을 굶어서 속죄가 되는 게 아니라
너희들은 이 속죄에 그 어떤 것도 기여할 수 없는 시체라는 것을 알아먹어라라는 의미에서 명령한 게
밥을 굶고 시체화되는 거예요. 그게 금식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한 금식은 그거 하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인간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밥 굶고 땡깡 부리면서 하나님 내 소원 안 들어주면 나 계속 굶어서 나 죽어버릴 거예요. 일주일 굶었는데 안 들어주면 나 40일 굶어버릴 거야! 이런 식으로 금식을 오용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마귀의 사고에요. 여러분. 밥 굶고 마귀편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짓 하지 말란 말이에요. 그렇다고 제가 금식하지 말라는 거 아니에요.
신약 시대에 오면 그럼 금식을 안 해야 되는가? 아니에요.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할 때 안디옥 교회가 금식했어요. 왜? 우리가 파송하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실 거니까 우리는 완전히 무력한 자입니다라는 고백으로
하나님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고백으로 금식한 거지
우리가 이렇게 금식하면서 열심히 기도하니까 이들을 지켜주세요. 그거 아니란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바울을 그렇게 죽이면 안 되는 거예요. 금식하며 기도했는데 그게 금식 아니란 말이에요.
여러분의 소원을 이루는 게 금식이 아니라 하나님 오히려 마음대로 하세요가 하나님 뜻대로 하세요가 금식이에요.
나는 죽은 자입니다. 죽은 흙입니다를 고백하는 게 금식이란 말이에요.
그런 의미로 하나님이 금식을 주셨는데 유대인들은 우린 이렇게 도에 지나는 금식까지 함으로 해서 하나님은 일 년에 한번 하라고 했지만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을 함으로 해서 하나님도 감동하시는 기특한 일을 할 수 있는 자다라는 걸 그들이 보이고자 한 거예요.
자기 영광 챙기기 자기 가치 챙기기의 일환으로 금식을 한 거예요.
‘나는 금식한다 어휴 3일째가 제일 힘들어’ 이거 물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는 좀 다른 의미로 금식을 했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들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오실 메시아에 관해 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럼에도 그들은 메시아를 맞기 위해서는 금식이라는 자신들의 기특하고 경건한 행위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중에도 ‘야 예수님 다시 오실 때 내가 기도하고 있어야 될 텐데 예수님 다시 오실 때 내가 교회에 있어야 될 텐데 내가 혹시 부부싸움할 때 오시면 어떡하지? 내가 혹시 놀음할 때 오시면 어떡하지?’ 요런 걱정하는 사람들 있죠? 요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인 거예요.
구원에 있어서 재림하는 예수를 내가 맞이하는데 있어서 내가 뭘 할 거는 없어요.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것뿐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금식을 한건 바리새인들처럼 금식이라는 행위를 자랑으로 여긴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율법에 행위가 메시아를 맞이하는 자들의 최소한의 예의이며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믿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게 율법주의에요.
기특한 일인 거 같지만 그게 율법주의입니다.
그런 거조차도 필요 없어요.
아무튼 그렇게 자신들이 힘들게 금식을 하고 있는 바로 그날 예수라는 분이 제자들과 함께 세리 마태의 집에 들어가서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 거예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한 일이 옳은 일이었다면 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비방을 해서는 안되죠.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들은 굶고 있는데 포도주를 마시고 식사를 하시자 비방을 하고 나선 거예요.
그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세례 요한의 제자들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 바로 이 새 포도주와 새 부대
생베와 헌 옷의 비유인 거예요.
본문 말씀을 잘 보시면 예수님은 당신을 혼인잔치의 신랑으로 표현을 하세요.
혼인잔치에 신랑과 함께 있는 이들이 어떻게 금식을 하겠느냐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약의 금식이라는 건 혼인잔치에서의 신랑과의 그 잔치 누림, 혼인잔치에서의 신랑과의 잔치 누림까지로 가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었지, 신랑이 함께 있을 때에는 전혀 무용한 것이다라는 그런 말씀이에요. 금식은.
좀 더 쉽게 말하면 금식을 포함한 모든 율법은 신랑이신 예수님을 만나는데 필요한 몽학 선생이었던 것이지 그것 자체에 어떤 효능이나 효과가 있었던 게 아니란 말입니다. 금식을 해서 그들의 죄가 대속된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들에게 뭔가 가르쳐 주기 위해 금식을 하라는 거지, 그걸 근거로 죄를 대속해 준게 아니었단 말입니다.
오히려 금식을 포함한 모든 율법은 우리가 금식을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
우리는 오직 신랑이신 예수가 율법을 다 지킴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시켜 줌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가 다 해결이 됐다라는 은혜의 복음으로 가라고 율법을 준거에요.
너희들은 이것을 못 지키니까 예수의 은혜를 꼭 붙들어야 돼…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은 죽은 흙이야
밥 굶어봐 어떠니 배고프지 그렇게 계속 굶으면 죽는 거예요.
너희들은 원래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면 그렇게 죽은 거야! 죽은 흙이야!
그런데 내가 너를 은혜로 덮어 거저 공짜로 너를 구원해 주는 거야!
그걸 가르쳐 주기 위해 금식 혹은 율법들을 허락해 주신 거예요.
로마서 3장 20절 보세요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노바디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 거예요
골로새서 2장 16절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이거 율법에 기록돼있는 금식 혹은 정결한 음식 부정한 음식 구분하는 거 그런 이야기하는 거예요.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신약시대에 지금 주어지는 규례에요 명령이에요 그런 거 인제 없다라는 거예요.
너희들 금식 안 한다고 누가 뭐라고 그래도 너희들 신경 쓰지 마 이런 뜻이에요.
이것들은 장례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그런 건 그림자였다라는 거예요.
실체는 누구? 예수 그리스도.
예수가 와서 다 성취하실 것이었어요. 율법은 전부다 안식일, 십일조 다 마찬가지예요.
예수가 와서 다 성취하신 거예요.
히브리서 9장 10절 보세요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또 나오죠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만 맡겨 둔 거라는 거예요.
먹고 마시는 거 금식 정결한 음식 부정한 음식 이딴 거 개혁할 때까지
예수가 오셔서 십자가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신약시대가 확 열릴 때까지만 필요했던 거예요. 그림자로 모형으로!
그러니까 신약에 와서는 먹고 마시는 거 금식이나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구분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는 거예요.
그건 단지 예수가 오실 때까지만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해 주어졌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성경이 우리 성도의 인생 전체를 금식의 삶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금식의 삶!
우리는 금식을 안 해도 되는데 예수님이 금식을 하셔서 우리에게 금식한 자로 당신의 금식을
전가시켜주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금식 같은 거 안 해도 돼요.
그런데 성경은 너희의 삶 자체가 금식이래요.
신명기 8장 1절 보세요
하나님이 하실 거니까 우리는 완전히 무력한 자입니다라는 고백으로
하나님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고백으로 금식한 거지
우리가 이렇게 금식하면서 열심히 기도하니까 이들을 지켜주세요. 그거 아니란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바울을 그렇게 죽이면 안 되는 거예요. 금식하며 기도했는데 그게 금식 아니란 말이에요.
여러분의 소원을 이루는 게 금식이 아니라 하나님 오히려 마음대로 하세요가 하나님 뜻대로 하세요가 금식이에요.
나는 죽은 자입니다. 죽은 흙입니다를 고백하는 게 금식이란 말이에요.
그런 의미로 하나님이 금식을 주셨는데 유대인들은 우린 이렇게 도에 지나는 금식까지 함으로 해서 하나님은 일 년에 한번 하라고 했지만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을 함으로 해서 하나님도 감동하시는 기특한 일을 할 수 있는 자다라는 걸 그들이 보이고자 한 거예요.
자기 영광 챙기기 자기 가치 챙기기의 일환으로 금식을 한 거예요.
‘나는 금식한다 어휴 3일째가 제일 힘들어’ 이거 물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는 좀 다른 의미로 금식을 했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들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오실 메시아에 관해 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럼에도 그들은 메시아를 맞기 위해서는 금식이라는 자신들의 기특하고 경건한 행위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중에도 ‘야 예수님 다시 오실 때 내가 기도하고 있어야 될 텐데 예수님 다시 오실 때 내가 교회에 있어야 될 텐데 내가 혹시 부부싸움할 때 오시면 어떡하지? 내가 혹시 놀음할 때 오시면 어떡하지?’ 요런 걱정하는 사람들 있죠? 요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인 거예요.
구원에 있어서 재림하는 예수를 내가 맞이하는데 있어서 내가 뭘 할 거는 없어요.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것뿐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금식을 한건 바리새인들처럼 금식이라는 행위를 자랑으로 여긴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율법에 행위가 메시아를 맞이하는 자들의 최소한의 예의이며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믿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게 율법주의에요.
기특한 일인 거 같지만 그게 율법주의입니다.
그런 거조차도 필요 없어요.
아무튼 그렇게 자신들이 힘들게 금식을 하고 있는 바로 그날 예수라는 분이 제자들과 함께 세리 마태의 집에 들어가서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 거예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한 일이 옳은 일이었다면 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비방을 해서는 안되죠.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들은 굶고 있는데 포도주를 마시고 식사를 하시자 비방을 하고 나선 거예요.
그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세례 요한의 제자들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 바로 이 새 포도주와 새 부대
생베와 헌 옷의 비유인 거예요.
본문 말씀을 잘 보시면 예수님은 당신을 혼인잔치의 신랑으로 표현을 하세요.
혼인잔치에 신랑과 함께 있는 이들이 어떻게 금식을 하겠느냐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약의 금식이라는 건 혼인잔치에서의 신랑과의 그 잔치 누림, 혼인잔치에서의 신랑과의 잔치 누림까지로 가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었지, 신랑이 함께 있을 때에는 전혀 무용한 것이다라는 그런 말씀이에요. 금식은.
좀 더 쉽게 말하면 금식을 포함한 모든 율법은 신랑이신 예수님을 만나는데 필요한 몽학 선생이었던 것이지 그것 자체에 어떤 효능이나 효과가 있었던 게 아니란 말입니다. 금식을 해서 그들의 죄가 대속된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들에게 뭔가 가르쳐 주기 위해 금식을 하라는 거지, 그걸 근거로 죄를 대속해 준게 아니었단 말입니다.
오히려 금식을 포함한 모든 율법은 우리가 금식을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
우리는 오직 신랑이신 예수가 율법을 다 지킴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시켜 줌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가 다 해결이 됐다라는 은혜의 복음으로 가라고 율법을 준거에요.
너희들은 이것을 못 지키니까 예수의 은혜를 꼭 붙들어야 돼…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은 죽은 흙이야
밥 굶어봐 어떠니 배고프지 그렇게 계속 굶으면 죽는 거예요.
너희들은 원래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면 그렇게 죽은 거야! 죽은 흙이야!
그런데 내가 너를 은혜로 덮어 거저 공짜로 너를 구원해 주는 거야!
그걸 가르쳐 주기 위해 금식 혹은 율법들을 허락해 주신 거예요.
로마서 3장 20절 보세요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노바디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 거예요
골로새서 2장 16절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이거 율법에 기록돼있는 금식 혹은 정결한 음식 부정한 음식 구분하는 거 그런 이야기하는 거예요.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신약시대에 지금 주어지는 규례에요 명령이에요 그런 거 인제 없다라는 거예요.
너희들 금식 안 한다고 누가 뭐라고 그래도 너희들 신경 쓰지 마 이런 뜻이에요.
이것들은 장례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그런 건 그림자였다라는 거예요.
실체는 누구? 예수 그리스도.
예수가 와서 다 성취하실 것이었어요. 율법은 전부다 안식일, 십일조 다 마찬가지예요.
예수가 와서 다 성취하신 거예요.
히브리서 9장 10절 보세요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또 나오죠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만 맡겨 둔 거라는 거예요.
먹고 마시는 거 금식 정결한 음식 부정한 음식 이딴 거 개혁할 때까지
예수가 오셔서 십자가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신약시대가 확 열릴 때까지만 필요했던 거예요. 그림자로 모형으로!
그러니까 신약에 와서는 먹고 마시는 거 금식이나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구분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는 거예요.
그건 단지 예수가 오실 때까지만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해 주어졌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성경이 우리 성도의 인생 전체를 금식의 삶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금식의 삶!
우리는 금식을 안 해도 되는데 예수님이 금식을 하셔서 우리에게 금식한 자로 당신의 금식을
전가시켜주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금식 같은 거 안 해도 돼요.
그런데 성경은 너희의 삶 자체가 금식이래요.
신명기 8장 1절 보세요
1.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어떻게 됐어요? 못 지킨다로 결정 났죠.
3.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의 이유와 목적이 적혀 있는 구절이에요.
광야 여정.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광야라는 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의 과정으로, 겪어야 하는 인생을 총칭하는 거예요. 그죠.
애굽에서 세상에서 나와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는 거 이거 전체가 성도의 인생이에요.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가시적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전의 모든 인생 역사를 광야라고 그래요. 성경이. 그래서 그걸 그 광야를 성도의 신앙생활이라고 명명을 해도 무방하죠.
그래서 스테반은 그의 설교에서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광야교회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이게 바로 교회가 겪는 신앙생활의 모습이다. 그것의 모형이다를 설명해 주기 위해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광야 교회라고 이야기한 거죠.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이 세상에서 살아내야 하는 인생 전체가 바로 광야에요.
그런데 이 구절 속에 이스라엘의 그 광야 인생의 이유와 목적이 함축되어 한마디로 요약이 되어 있는데 그게 뭡니까? 낮추시고 시험하고 주리게 하심이죠. 광야의 이유와 목적이 뭐예요|? 낮추시고 시험하고 주리게 하심이에요.
그러니까 성도의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낮추어지고 시험당하고 주려 죽는 삶이어야 맞아요.
주려 죽는다는 건 옛사람의 아사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가난하게 굶어 죽어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옛사람의 아사!
모든 인간은 이 옛사람을 살찌우기 위해 세상 힘들을 마구마구 모으고 얻어내어서 옛 사람을 어떻게 하면 높은 자리로 올려놓을까?
이걸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살게 할까? 더 살찌울까? 이것만 걱정하고 있는데
성도는 그 옛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하여 굶겨 죽이는 거예요.
세상의 힘으로부터 자꾸 마음을 떨어뜨리게 하여 이 옛사람을 굶겨 죽이는 거예요. 그게 주려 죽는 삶이에요.
낮아지고 시험당하고 주려 죽는 삶 그게 성도의 광야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낮추시고 주리게 하신다라는 히브리 단어가 라이브 아나라는 단어에요.
그런데 이 단어가 레위기의 속죄일 규례 속죄일에는 뭐 해야 된다 그랬어요? 금식 대속죄일에는 뭐 해야 된다? 금식.
그 속죄일의 규례에 그 단어가 그대로 나온다 말입니다. 한번 볼까요.
레위기 16장 29절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 지니라 대 속죄일의 규례 7월 곧 그달 10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게 아나에요 스스로 괴롭게 하다 이게 아나 금식하라라는 뜻이거든요.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라리 어떻게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그들에게 계속해서 스스로 괴롭게 하라 스스로 괴롭게 하라 주려라 금식하라라고 이야기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 일을 겪은 이스라엘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의 대 속죄일에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일은 금식하는 일을 말해요.
그리고 그 단어는 그대로 신명기 8장 1절 3절에서 그대로 쓰였어요. 낮추시고 시험하고 주리게 하시는 걸로
그런데 신명기 8절의 그 이야기는 성도의 광야 인생을 요약하여 설명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성도의 광야 인생은 낮추어지고 시험당하고 주려 죽는 삶인데 그 전체가 금식의 삶이다란 뜻이죠.
여기까지는 논리가 연결이 되세요? 성도의 삶 전체가 금식에 삶이에요. 금식의 삶.
그 모든 내용을 전부 이해하고 하나님 앞에 나는 죽은 자에 불과하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덮어 주세요. 그 길 밖에 살길이 없네요. 은혜로 나를 덮여 주세요라는 그 고백으로 드리는 것이 금식이라는 종교행위여야 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이 밥을 굶는다면 언제든지 오케이에요. 언제든지 오케이.
그런데 여러분이 원하는 걸 얻어내기 위해 땡깡을 부리는 목적으로 금식을 한다면 억지로라도 퍼 먹일 거예요. 제가. 그런 금식은 죄에요. 솔직하게 얘기하세요. 다이어트 하려 그런다고 그럼 용서해 드릴게요. 그러면서 무슨 뭐 나는 저녁 금식한다고 그거 다이어트지 뭐예요. 저녁금식.
그러니까 우리 성도의 전 인생이 요약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행위 그게 금식이에요.
그렇게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 판단의 주체가 되어서 이 세상의 왕으로 살고 싶어 했던 옛사람이 금식의 삶. 성도의 그 금식의 삶. 주려 죽는 삶. 하나님이 주리게 하시죠. 세상의 힘을 자꾸 끊어 내신다 말이에요. 마음을 자꾸 끊어 내세요.
그 주려 죽는 삶에 의해 금식의 삶에 의해 굶어 죽어가게 되고 마지막 죽는 그 그때가 부활하는 때예요. 옛사람이 다 죽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옛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죠? 자기에게만 부어졌던 자기 사랑이 비로소 하나님과 이웃에게 나누어지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 나라의 삶이에요.
근데 조금 한번 솔직해져보자고요. 여러분은 지금 구원을 받으셨죠. 따라서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 낮추시고 주리게 하시고 시험을 하시는 광야에 삶을 살고 계세요. 금식의 삶을 살고 계세요 맞아요. 그러면 여러분의 옛사람이 지금 자꾸 굶어 죽어가고 있어야 돼요. 아사되어져 가고 있어야 하는데 진짜 그렇습니까? 진짜 여러분의 옛사람이 주려죽어가고 있어요? 아니면 주려 죽기는커녕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서 세상의 떡을 향한 정욕과 탐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어요? 후자죠.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게 전부 뭡니까? 떡 주세요! 떡 주세요죠!
하나님은 금식의 삶을 통하여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게 아니야, 세상의 힘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목적으로 하여 사는 거란다라를 가르쳐 주려고 금식의 삶을 우리에게 허락했대는데
광야 인생 신앙생활을 우리에게 허락했대는데,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께 구하는 게 뭡니까? 떡 주세요. 건강 주세요. 명예 주세요. 인기주세요. 이거 아닙니까? 그들을 신자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아요? 그들이 불신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가 부인당하는 그 삶을 내어놓지 못하고,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 내 목적은 이거고 내 계획은 이건데 당신은 그냥 군소리하지 말고 나 가르칠 생각하지 말고 내 뜻을 좇아 힘만 빌려줘 이들을 불신자라고 하는 거예요.
불신자들이 온통 예배당에 앉아서 집 팔아서 헌금도 하고 선교도 가고 가면서 자기의 욕심, 자기 영광 챙기기, 자기 가치 챙기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사야서로 가보면 하나님께서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적어 놨어요. 볼까요.
이사야서 58장 4절 보세요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친다는 건 나만을 위해서 산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툼이 나오는 거거든요. 어떻게 금식을 하는데
금식은 내가 너희들에게 너희는 죽은 흙이며 너희들이 가장 낮은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너희들은 무력한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준 건데 어떻게 그런 금식이라는 걸 하면서
‘네가 더 잘난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남과 다투니?’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게 어떻게 너희들을 괴롭게 하는 너희들을 부인하는 일이 되겠느냐? 너희들을 자랑하는 거지. 이런 뜻이에요.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우리가 밥을 굶으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내가 밥을 굶으면 압제당하는 자가 그 압제에서 풀려나요? 묶여 있는 자가 풀려납니까? 이건 누가 하신 일이에요? 십자가에서 예수가 하신 일 아닙니까!
금식은 예수가 완성하시는 거예요.
또 주린 자에게 내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내 집에 드리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않은 것이 아니겠느냐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부요하신 예수가 가난한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해진 그 이야기하는 거예요.
골로새서에서 당신을 비워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살려내신 그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일을 누가 하셨냐고요? 예수가 하신 거예요.
8절 보세요 그리하면 내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그런 일을 하면은 하나님이 능력과 복을 더 붓고 하나님이 지키신대요. 여러분 이게 복음이에요? 거기서 아멘하면 안 되죠.
여러분 여러분이 그런 능력이 있냐고요? 그걸 행하면 하나님이 복 주고 하나님이 능력 주고 지킨다고 하는데 그걸 행할 능력이 있어야 복을 받을 거 아닙니까!
성경은 분명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 그랬어요.
그런데 누가 어떤 능력을 갖고 이 일을 하냐고요. 이 금식을 할 수 있는 이는 예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예수가 그 인생 동안에 금식을 하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아사하여 죽는 거예요.
내가 목마르다 금식의 완성자로 예수가 오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우리에게 허락하신 거예요.
예수님이 공생애를 뭘로 시작하세요? 40일 금식. 그 40일이라는 건 40년 광야 인생의 상징입니다.
내 인생이 바로 이 40일 금식 주려 죽는 인생이 되는 거야 그리고 거기서 낮아지시고 시험을 받으시잖아요. 그런데 그 시험에 예수님이 그렇게 낮아지고 주려죽는 그 자리에서 그 시험의 어떤 답을 내놓으세요. 하나님이 주신 답안지에다가 무슨 답을 쓰십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거야라고 정답을 쓰시잖아요.
신명기의 그 답을 예수가 마태복음에서 쓰신다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금식을 우리에게 거저 전가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금식한 자가 되었어요.
그리고는 그 금식이 어떻게 너의 삶에서 이루어졌는지를 가르쳐 주심으로 말미암아 ‘어 내가 한 게 하나도 없구나 하나님이 다 해주셨구나’라고 내가 낮아지면서 내가 하나님의 지혜에 의해 점점 부인이 되고 그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내가 굶어 죽는 거예요. 그게 자기부인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 땅에서 금식의 삶을 살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미 금식의 삶을 주셨어요.
그런데 어떤 식으로 금식의 삶을 사냐면 내가 열심히 금식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나를 아사시켜 가는
나의 옛사람을 아사시켜 가는 그런 금식의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금식이 내 안에 뚫고 들어와 예수님의 은혜가 나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나를 점점점점 밟아
그 은혜가 나를 죽여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은혜를 아는 만큼 죽어가는 거예요. 은혜를 아는 만큼 내가 아사되어져 가는 거예요. 내 옛사람이… 그게 하나님의 지혜에요. 그게 복음이에요. 그렇죠 여기서 아멘해야죠. 이사야서의 그 이야기를 예수가 행하시는 거예요. 그런 능력은 그 어떤 인간에게도 없어요. 하나님이신 예수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있을 때는 우리에게 이제 금식이 필요 없어진 거죠. 왜냐면 예수님이 내 삶에 들어오셔서 온전한 금식을 갖고 들어오셔서 예수님이 금식을 시켜주세요. 우리의 삶 속에서 나를 아사시켜 가니까…
그러면 그 신랑이신 예수와 관계있는 자들은 구약의 그 밥을 굶는 금식을 할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는데 그들이 금식 일을 정해서 금식을 하고 있고 예수님은 그날 일부러 밥을 드시고 계세요.
그것도 세리의 집에서 창녀들과 예수님이 뭘 이야기하려고 하시는지 아시겠죠?
구약 전체를 부정하는 거예요. 기각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존재할 수 있어요. 그러한 복음의 현실 속에 들어있는 자들 그리고 그 전체 복음을 새 옷 새 포도주라고 하는 거예요. 새 옷, 새 포도주 그런데 그 새 옷 새 포도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와 있는데 헌 옷, 헌 부대가 묵은 것들이 와갖고
‘너네는 왜 밥 안 굶어?’ 이렇게 비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빗대어 지금 비유로 예수님이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자 그 새 술과 새 옷의 주인공들이 이 세상에서 그 복음에 현실 안에서 새 부대 안에서 누릴게 뭐예요?
일차적으로 누려야 하는 게 뭡니까?
“아 나는 이제 금식을 안 해도 되는 자구나 내가 금식해서 구원받고 내가 금식해서 죄 사함을 받는 게 아니라 내가 금식해서 하나님에게 이쁨 받고 내가 금식해서 하나님에게 기특한 자라는 칭찬받는 게 아니라 예수의 금식으로 나는 살아나는 자구나 예수의 금식 때문에 나는 기특한 자라는 칭찬을 받는 거구나” 하며 그 혼인잔치를 예수와 함께 즐기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신랑이 같이 있는데 왜 굶고 있니? 그건 신랑이 오기 전에 너희들에게 뭔가를 교훈하기 위해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명령하신 건데 너희들 왜 지금까지 밥을 굶고 있어 신랑이 왔잖아! 왜 나를 못 알아봐! 아하 너희들은 묵은 것을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새것인 나를 못 알아보는 거야! 그 이야기하는 거예요.
자신을 비방하는 이들에게 너희는 묵은 걸 좋아하는 헌것들이라 구약의 인물들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나를 못 알아보는구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요리문답 일 번 인생의 목적이 뭐예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분을 즐거워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거예요. 세상 것을 즐거워하는 게 아니라, 내 자랑을 즐거워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즐거워하는 거예요. 그게 인생에 목적이라니깐요. 성도의 삶의 목적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즐거워하려면 나는 비워져야 돼요. 왜? 그분이 전부여야 되거든요.
그게 신앙생활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그분의 사랑에 그냥 감격하면 돼요.
그리고 감사하면 돼요. 그때 여러분은 그분을 사랑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분과 화목될 수 있어요. 성도가 이 땅을 사는 유일한 한가지 이유는 하나님과 불화되었던 지점에서 화목하고 가는 거예요. 그런데 그 하나님이 계속해서 여러분에게 구약의 율법으로 하기 싫은 걸 억지로 강요하고 있으면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요?
내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강요하고 있어, 여기도 지금 오기 싫어 죽겠는데 마누라 때문에 끌려온 분들
계시죠? 나는 오늘 골프 약속이 있어 그런데 마누라가 그냥 안 가면 죽인데 자 그런 사람이 억지로 그렇게 자기에게 하기 싫은 걸 시키는 그 존재를 만났을 때 언젠가 그분이 내미는 손을 덥썩 붙들 수 있을까요? 하나님 사랑합니다. 아니에요. 당신이 평생 내가 그렇게 하기 싫은걸 억지로 강요했던 그 할아버지군요. 나는 당신이 있는데 절대 갈 수 없어요. 스스로 지옥 가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가는 거예요. 그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그분을 사랑해야 돼요. 그분을 사랑하려면 여러분이 얼마나 무력하고 패역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어떤 은혜로 여러분을 구원해 냈는지를 배우셔야 돼요. 반복하고 반복하여 그래야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요. 여러분을 미워할 수 있단 말입니다. 내 옛사람을 미워하여 아사시킬 수 있는 거예요. 그 사람만이…
그래서 제가 은혜만을 요즘 가르치는 거예요. 여러분 그 은혜를 너무나 모르기에…
이렇게 우리의 옛사람은 우리가 죽여가는 게 아니라, 예수의 금식이 우리를 아사시켜 가는 거예요. 그걸 아는 이들이 그 하나님 앞에서 점점점점 죽은 흙, 처음 자리로 돌아가는 거예요. 선악과 따먹고 나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점점 내려와 원래의 처음 흙의 자리, 하나님 저는 피조물이잖아요. 하나님이 생기 거두면 언제든지 죽은 흙이 되어 버릴 피조물이잖아요. 하나님 마음대로 하세요. 선악과 먹지 말라 그러면 안 먹을게요. 예 밥 굶어 그러면 굶을게요. 야 먹어 인제 됐어 먹어 신랑 왔으니까 먹어 그러면 먹을게요. 그 삶을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거예요. 지금 그 삶을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처음 자리가 자기들의 처음 자리가 뭔지도 모른 체 스스로 경건한 행위와 종교행위를 함으로써 하나님을 지금 감동시키고 있는 거예요. 마구마구 굶으면서…
예수님이 그걸 보면서 왜 굶고 그래 신랑이 왔는데 왜 굶고 그래 나무라시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 새 옷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게 되는 은혜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이야기해요.
신약시대는 예수님의 은혜로 창조가 되고 은혜에 의해 경륜이 되어야 됩니다. 그 새 포도주와 새 옷은 절대 헌 옷과 헌 부대 구약과 조화가 될 수가 없어요. 절대 안 돼요. 왜냐면 새것은 헌것을 파괴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생베 조각 새 옷을 헌 옷에다 붙이면 새 옷이 헌 옷을 찢어발깁니다. 당겨서…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넣으면 새 포도주가 발효가 되면서 헌 부대를 찢어발겨요.
새 포도주인 새 언약의 주인이신 예수가 왔어요. 참 성전인 새 성전 예수가 왔더니 돌로 된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구약의 그 율법의 성전이 부서져 버리는 거예요. 같이 공존하면 안 돼요.
그래서 이 시대에 지금 이스라엘에 무슬림 사원이 서있는 그 자리에 새 성전이 서면 안돼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 자리 못 뺏고 있는 거예요. 아직까지… 그것만 하더라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까짓거 왜 못 뺏겠어요. 하나님이 못 뺏게 하는 거예요.
새것과 헌것은 함께 갈 수 없어요. 그 자리 뺏어서 이스라엘이 성전 지으면 제사가 다시 시작됩니다.
유대인들은 거기서 제사 지내기 위해 시오니즘을 주창한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가 문제가 아니라 성전 지을라고 그런데 세계 대전 때문에 그걸 못 뺏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둘을 절대 공존시키지 않아요. 그런데 그 새 언약의 새 부대의 주인이신 예수 앞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그 구약의 율법, 묵은 것들이 와서 너희들 왜 금식안해? 하고 엉겨 붙는 거예요. 어떻게 될까요? 새 옷에 의해 찢어지는 것입니다.
새것은 그렇게 헌것을 찢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고 하면서도 자꾸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고 자기의 공로를 앞세워서 잘난 척을 하고 있어요.
선한 행실과 도에 지나는 헌신으로 개인과 교회의 명성을 높이고자 해요. 자기들의 힘으로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을 오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요. 작은 천국을 자기들이 구현할 수 있대요.
그래서 데모도 하고 촛불 들고 나가기도 하고 사회정화, 사회개혁도 하기도 해요.
여러분 그런 사람들의 설교에서 예수에 대한 설명을 몇 번이나 들어보셨습니까?
여러분 그건 인간들이 하는 게 아니에요. 인간은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서 여기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행복 추구하며 사는 거 아니에요. 그건 죽은 흙들이 그렇게 사는 거고…
하나님의 백성은 여기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완성이 된 하나님 나라! 거기 소망하며 이 세상에서 아사되어져 가는 거라니깐요. 굶어 죽어가는 거예요. 금식의 삶 사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들이 너무 잘나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게 아니라 그리고 그 분이 우리에게 선물하시는 그 나라를 구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뭐를 해서 이 땅을 살기 좋게 만들어 주겠다는 거예요.
가난한 자들을 평등한 대우를 받게 해주겠다는 것이죠. 교회가 교회는 그런 일을 하는 걸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아서 살면 안돼요. 멀리갈 필요도 없어요.
여러분은 왜 신앙생활하세요? 왜 교회 오셨습니까? 오기 싫은거 죽겠는데 억지로 온 분들 분명히 계실 거예요. 왜 오셨어요? 천국가기 위해 오셨죠? 그리고 좀 더 저급한 분들은 소원 성취하러 오신 거예요. 보험료 납입하러 온거죠. 한주 미납입하면은 혹시 서스펜드 될까봐… 아이 빠지면 재수없을까봐…
그냥 매주 가주기는 한다. 그러고 오신 분들도 계세요. 좋아요. 조금 고급한 분들 나는 천국가기 위해서 여기 왔어요! 라는 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안오면 천국 못가나요? 그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에요. 그게 바리새인들입니다.
여러분은 여기 안오셔도 천국 갈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오시냐면 그러한 죽은 흙에 불과한 나를 하나님이 도대체 내가 뭐라고 그렇게 큰 은혜를 부으셔서 이렇게 살려 내셨는지 그 비밀을 조금더 알고 싶어서 더 알고 싶어서 그 하나님이 너무 감사해서 그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싶어서 오시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나는 천국가기 위해서 왔는데요. 이 사람들이 묵은 것이에요. 그게 옛 부대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신앙생활하는 분이 되어서는 안돼요. 그게 아직까지 인본주의에 빠져 있는 거예요. 나의 구원 나의 천국을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게 아니라 죽은 흙에 불과한 나를 그 하나님이 도대체 왜 사랑하셨는가를 궁금해하고 그것을 안 자로서 그냥 이렇게 허투로 막 살 수 없으니까 교회의 삶을 살고 싶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막 한시간이 넘는 설교 더워 죽겠는데 그 예수의 이야기가 퍼져 나오니까 그걸 이렇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듣고 있는 거예요. 벌써 세상사람들의 논리에 의하면 집중력이 흩트러 졌어야 되는데 점점 빨려 들어오고 있어 저만의 생각인가요. 허허 그렇게 믿고 싶어요. 저는요.
여러분 천국은 예수의 공로로 완성됐어요.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의 공로로 거기에 이미 들어가 계신 분들이에요. 그러니까 그것때문에 여러분이 거길 들어갈려고 뭘 한다라고 한다면 스탑하세요.
그런 마음으로 착한일도 하고 그런 마음으로 종교행위도 하고 뭐 이러니까 요즘 제가 은혜에 대해서 설교하니까 자꾸 공격해 들어오는 거예요.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이 전화하고 이메일해서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냐? 아니 제가 언제 아무것도 하지 말라 그랬어요. 보세요.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냐라는 말이 나온다는 건 자기가 하기 싫은걸 지금 억지로 하고 있었다라는 얘기거든요.
내 안에서 내가 부인된 상태에서 예수가 사는 삶 갈라디아서 이야기처럼 내가 죽고 예수가 성령이 내 안에서 사는 삶이 나와 종교행위가 나오고 선한 삶이 나오고 헌금이 나오고 섬김이 나왔다면 제가 그 어떤 걸림돌을 던진다 할지라도 그러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네요? 이런말 할수가 없어요.
그건 지금 지가 하고 있었단 얘기거든요. 그러면 스탑하라는 거예요. 저는요.
그런 질문이 나올 정도면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군요 죽은 흙이군요라고 내려가고 있었는데 내 안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성령의 열심이 나의 열심으로 화하여 내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한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내가 섬길 수 있을까라는 마음에서 나온 거라면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네요? 이런 말이 안나온다 말입니다.
그걸 지금 자기가 천국가는 데에 필요한 어떤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게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럼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말이에요. 그래 그럼 하면은 어떻게 되는가요.
하면 그걸 근거로 천국 보내주냐 말이에요. 이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라니깐요.
이게 바리새인들인 거예요. 그거 아니에요.
여러분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그런데 내 안에 성령이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그 열심이 나를 열심있는 자로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예수 그리스도 이 복음, 은혜의 복음을 더 많이 배우셔야 돼요.
예수와 친해지셔야 돼요. 하나님과 친해지셔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행하는 모든 선한 일 종교행위는 다 자기 의에요. 목숨걸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향해 비방을 하잖아요.
너 왜 율법 안지키냐구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이 시대에 와서 우리 주일날 다 예배드리고 있는데, 요 앞에 술집에 가서 창녀들하고 소주를 한잔 하고 계세요. 그 그림이잖아요. 그때에 여러분이 뭐라고 그러시겠냐구요? 저 인간은 도대체 누군데 우리는 이렇게 경건하고 깨끗하게 예배드리는데 이경건한 주일날 그것도 창녀들하고 술을 마시고 있냐? 아니 예수님 말고 제가 여러분은 여기서 열심히 예배 드리고 있는데 딴 사람도 아니에요 창녀들 몇명을 어디서 불러왔는지 불러다가 요 앞에서 소주를 한잔 마시고 있어 세리들하고 죄인들하고 막 강도들 모아놓고 그러면은 여러분은 저를 어떻게 평가하시겠냐구요? 비방할거 아닙니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비방한게 잘못된 거예요? 아니잖아요. 율법주의의 세계관으로는 당연한거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왜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세요.
신약의 시대 은혜의 시대에는요 인간들의 육적인 눈으로 선악을 판단하는 시대가 아니란 뜻입니다.
구약시대는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서 그것으로 선악의 판단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자기들이 악하다 생각하는건 그냥 악한 거예요. 왜 금식일날 창녀들하고 왜 술먹어? 예수님을 욕했단 말입니다. 그게 이 세상 도덕과 윤리의 기준으로 봤을때 이 세상 선악구조의 세계관으로 봤을때는 나쁜 일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 일을 행하셨다는건 은혜의 시대에는 인간의 선악구조로 뭐가 판단되어지는 시대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거는 구약시대의 세계관이에요. 구약시대에는 인간이 율법도 잘 지키고 선한일도 해서 가치있는 존재가 됐어요. 그리고 가시적인 세상 복을 받았단 말입니다. 그게 구약시대에요. 인간이 한 만큼 받는거…
그러나 신약은 인간은 죽은 흙이에요. 금식하는 자에요. 예수가 은혜로 부어져서 거저 건져 올리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나는 이제 육체대로 모든 사람을 알지 않기로 했다라는 거예요.
그가 육체대로 모든 사람을 봤을때는율법의 수호자로 그가 서 있었을 때에는 스테반이 죽을때 그가 당연히 죽어야 할 자로 여겼다 그래요. 사도행전 8장에 그죠.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나고 은혜를 알게 되니까 정작 죽어야 할 자는 나였는데 내가 살았단 말입니다. 그러면 누가 죽을 자냐는 거예요. 내가 그 스테반을 죽였는데 내가 은혜에 의해 살아났다면 이 세상 그 누가 죽을 죄를 진 자냐 말이에요. 그게 구약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자만 죽어요. 그 위에 모든 성도는 그가 한 행위에 의해서 상을 받고 벌을 받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이라는 상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일부러 금식하는 사람 앞에서 소주 한잔 하시는 거예요. 일부러 안식일 지키는 자들 앞에서 제자들아 먹어 밀 비벼 먹어! 일부러 안식을 지키고 있는 그자들 앞에서 병자 일으켜 세워 버리는 것입니다.
일부러 구약을 부셔 버리는 거예요. 계속해서 율법을 부수고 들어가시는 거예요. 그런 행위와 노력과 열심으로 구원에 이르는거 아니라 너희들은 죽은 흙이라니까 선악과 먹지말어 그러면 안먹어야 되는 그런 존재인데 왜 따먹고 왜 그건 쳐먹고 지금 너희들이 하나님 노릇하냐는 거예요.
요한복음 공부할때 배웠잖아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신이라 했다 그랬어요. 무슨 말이에요? 그게 하나님 백성이 신입니까? 여러분 종교인들은요 니들은 신이야 그러면 아니라 그래요.
무슨 신이야? 그런데 사는 삶은 전부 하나님처럼 살아요. 내가 우주의 중심이에요.
그거 예수님이 비꼬시는 말입니다. 니들 신이라매 아니 언제 신이라 그랬어 아니 하나님이 니들 신이라 그랬잖아 니들이 신이야…
선악과 따먹었으니까 신이야~ 아니에요. 우리는 하나님 섬긴다니깐요. 율법지켜요. 제사지내요.
무슨 신이에요.
근데 니들이 신이야 너희들은 나를 도구요 방법으로밖에 안쓰잖아! 그럼 니들이 신이지 뭐냐!
그런데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왔는데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왜 나보고 뭐라 그래 말씀하시는 거예요.
인간들은 전부 신처럼 살아요. 자기들이 하나님이에요. 다 그게 구약이라니깐요. 그걸 깨고 들어오시는 거예요. 신약의 예수가!
그런데 거기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 바리새인들 오늘날의 교회, 개혁주의가 구약을 헌 옷을 갖고 그 새 부대에게 엉겨버리는 거예요.
한번 해볼래 나도 할 수 있다니까. 그리스도의 푸른계절 우리도 만들수 있어, 나도 칭찬받는 일할 수 있어 이러고 나서는 거예요.
자 그렇게 새것에 헌것이 와서 엉기면 어떻게 된다구요? 찢어진다 말입니다.
보세요 여러분의 인생이 성도에요. 여러분이 주려 죽는 금식의 삶을 살아야 돼요. 신약의 삶을 살아야 된다 말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우리는 옛사람에게 먹이를 주고 있잖아요. 세상의 힘 뭐 여러 가지 선한 행위 이런거 얻어서 이런거 쌓아서 우리의 가치챙기기 하고 있잖아요. 그게 구약이란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찢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찢어짐의 삶으로 점철이 되는 거예요. 그게 찢어지지 않으면 그게 가짜인 거예요. 그걸 고난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복음이 신약이 새 술이 뚫고 들어와 옛 푸대와 옛 옷을 찢어발기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는 헌 부대네. 우리는 묵은 술이네. 우리는 헌옷이네. 이걸 폭로당하면서
예수님에 의해 찢김을 당해요. 그렇게 찢김을 당하는데 그 예수의 은혜에 의해 내가 죽는 거예요. “난 아니구나”라고 죽는 거예요.
그때 내가 아사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노력으로 내가 아사하는게 아니라 나는 계속 실패하는데 예수가 뚫고 들어와 나를 찢어 발김으로 말미암아 내가 죽어가는거야, 내 옛사람이 죽어가는 거예요. 그걸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수지 맞은 분들인 거예요. 그 은혜를 아는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나타나는 현상이나 아니면 사람들의 됨됨이를 보고 선이다 악이다 여러분이 판단하시면 안돼요.
이제는 우리는육체대로 알면 안돼요. 구약시대의 그 판별법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반복하여 집단학살 한 이들을 너희 참 순종했어 잘했어!
시아버지 하고 간음한 여자보고 너 참 의롭다! 거짓말 한 사무엘 보고 너 순종했어! 이런 단어들을 쓰시는 거예요. 그건 구약의 관점으로 헌 부대, 묵은 술의 관점으로 봤을땐 맞아 죽어야 되는 일이였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신단 말입니다. 육체대로 판단하지 않는 거예요. 육체대로 알지 않는 것입니다.
역사를 역사의 관점으로 해석하는게 아니라 역사를 창세전의 묵시에 관점으로 바라보는 거예요.
하나님의 구속사의 관점에서 이게 유용한 일이냐 아니냐로 판단을 하는 것이지, 묵시로 판단이 되는 거지 역사를 역사와 현실로 판단하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좀 잘난 사람들은 잘난척 하면 안되는 거예요. 못났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가 못났구나 자괴감 가지면 안돼요. 그게 구약이에요.
하나님이 그들을 찢어 발기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제 설교를 들으면서 계속 찢겨 져야 돼요, 찢어 져야 돼요.
저는 여러분의 그 고통에 반창고나 마취제를 진통제를 붙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거기에 소금을 뿌려놓고 완전히 찢어 발기는 사람이 되야 돼요.
왜? 저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이 떨어지면 옛 푸대에 젖어 사는 우리는 계속 찢어 발김을 당해야 돼요. 그래서 아파야 돼요. 아파야 돼요! 지난주에 우리 교인중에 한분이 오셔서 난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요, 너무 써요 하고 우셨는데 저는 그 통곡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봤어요.
너무 아파요 수십년간 신앙생활을 한 50이 넘은 남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해체당하는 거예요.
찢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게 잘가는 거예요. 찢어져야 돼요! 우리는 아직 부활의 몸을 못입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주님께서 너희가 금식을 해야 되는 날이 온다. 그러죠? 이거 아주 중요한 말이거든요.
그런데 그 금식을 해야 하는 때는 신랑을 빼앗겼을때래요.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 언제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는 날이에요.
그때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거든요. 그때에 그들은 예수님을 빼앗기고 금식을 하면서 내가 예수를 죽인 죄인입니다. 나 때문에 예수가 돌아가셨습니다 라는 그 가장 낮은 죽은 흙의 자리,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 예수가 죽은 것입니다라는 고백으로 내 육의 죽음을 경험하는 그리고 그 육의 죽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그런 자가 되야 되는 거예요. 모든 인간은요.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를 빼앗긴날 내가 예수 죽인 자입니다라는 그 금식의 자리로 내려가는 거예요.
그런데 그 예수님이 식사를 하실 때 금식을 하던 그들이 예수님을 빼앗겼을때 어떻게 했어요? 그때 금식했어요? 그날이 무슨 날입니까? 유월절. 유월절은 무슨날 명절 뭐했겠어요? 잔치 벌렸습니다. 그게 죄인들의 세상이에요.
예수님을 빼앗긴 자들은 반드시 죽은 흙의 자리로 내려가서 내가 예수 죽였습니다. 저 자리가 내 자리입니다.라고 예수의 십자가에 나를 같이 못박아야 돼요. 그게 신랑을 빼앗긴 신부들의 금식이에요.
그게 육의 죽음!
그런데 온 세상은 자기들의 노력과 열심과 깨끗함을 종교행위를 부정해 버리는 예수가 죽자 잔치를 벌려요. 자기의 더러움을 폭로해 버리는 그러한 예수가 죽자 잔치를 벌리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가 온 겁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자들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그 예수의 십자가를 앞에 놓고 잔치를 벌리고 있잖아요. 예수님이 지신 그 십자가 앞에서 내 유익만을 챙기고 있어요. 내 가치만을 챙기고 있어요.
내 가족 내 나라 다 내꺼 아닙니까? 그게 나에요. 나 민족주의라는게 무슨 대단히 기특한 건줄 아세요? 가족사랑이라는게 뭐 대단히 기특한 것인줄 아십니까? 그게 나를 사랑하는 죄에요. 내꺼밖에 없어요.
기도의 내용 보세요. 전부 나, 내 가족, 내 자식, 내 부모, 내 교회 왜 그게 잘되면 내 위상이 올라가거든요! 그걸 죄라고 해요. 그걸 위해 사는걸 헌 부대라고 하는 거예요. 헌옷이에요. 그게 묵은 술입니다.
그게 구약이라니깐요. 그래서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축복을 받으면 부자가 돼요.
신약에서는 정 반대에요. 고난을 통과하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었어요. 그런데 신약이 와서 구약을 찢어 발겼다니깐요. 그런데 여전히 구약 안에 갇혀가지고…
여러분 이 시대에 교회에 예수가 오면 어떻게 될까요? 교회가 예수를 못박아 죽일 겁니다.
내가 원하는 걸 안주는 그런 예수 필요없는 거죠. 그래서 오늘 본문이 묵은걸 좋아한다, 사람들은 묵은 포도주 묵은 걸 좋아한다 그러는 거예요. 묵은게 좋은거에요? 진짜 저는 잘몰라요. 여러분 묵은 포도주에 맛을 들인 사람은 새 포도주 안먹습니다. 예수님이 그걸 아신 거예요.
히브리 사람들은 포도주를 음료수 처럼 먹었기 때문에 포도주에 대한 견해가 뚜렸했어요.
너희들 묵은 것 맛들이고 새것 먹을 수 있겠니? 그마만큼 세상에 대한 사랑 나라는 존재에 대한 사랑은 끊어내기가 그렇게 힘든 거예요. 그마만큼 매력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우리가 스스로 어떻게 끊어내요. 그래서 예수님이 금식의 삶을 살고 우리에게 거저 주신 거예요. 그리고는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직접 들어오셔서 가르치고 계시는 거예요. 우리를 헤체 시키는 거예요. 찢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10장 33절 보세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예수님이 뭘 갖고 오셨어요? 복음 갖고 오셨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걸 검이라고 표현하세요.
뭘 찢는 거예요. 구약의 사고를 찢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부자 되는게 축복인줄 알어? 건강한게 축복인줄 알어? 천만에 말씀. 영생을 이해하고 은혜를 이해하는게 축복이야! 찢어발기는 거예요.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이런 일 당해보신적 있으세요 골수를 칼로 쪼개면 얼마나 아프겠어요.
여러분 말씀을 들으면서 그렇게 아파본적 있으세요? 아파서 울음이 나와야 돼요. 내가 얼마나 추악한 존재인지를 말씀 앞에서 폭로당하면서 여러분 통곡을 하셔야 돼요. 골수를 칼로 찔러 쪼갤때 처럼 아픔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된다 말입니다!
그런데 너무들 잘나서서 쪼개지지가 않어, 들어가지가 않어,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나는 잘났어 착하게 살고 있거든요. 아닙니다. 여러분은 말씀 앞에서 난도질 당해야 돼요. 포가 뜨이는 경험을 하셔야 돼요. 아프셔야 돼요!
그렇게 예수님이 여러분을 찢어 가실 때에 말씀이 찢어 가실때 여러분이 비로소 여러분 안에 있는 새 부대를 발견하는 거예요.
아 여기에 넣어야 되는 거구나! 그리고 여러분이 입고 있는 헌옷 벗어버리고 예수님 주시는 새 옷으로 갈아 입는 거예요. 그게 부활의 옷입니다. 그 전까지는 계속 찢기는 삶을 사는 거예요.
그래서 금식을 선물받은 자가 금식 주려 죽는 삶을 역사속에서 사는 거예요. 이해가 가시죠?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그렇게 금식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도는 예수님의 신부에요. 신랑이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면 신랑을 빼앗기면 같이 그 죽음에 동참해 버리는 신부 그 신랑에게 귀속되어져 있는 존재로 살아야 하는 게 바로 성도란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 오늘날의 그 신랑과 신부의 그런 관계로 성경을 이해하시면 안돼요.
성경에서의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완전히 귀속된 관계에요. 신부라는 존재 자체가 신랑의 갈비뼈에서 적출이 된 거기 때문에 신부는 신랑에게 귀속이 되어 있는 존재에요. 그래서 신랑이 죽으면 함께 죽어야 되는 존재인 것입니다. 저희 아내가 뭐 입버릇처럼 제가 죽으면 따라 죽겠다고 그날 죽겠다 그러는데 믿거나 말거나 신부들은 그래야된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어서의 신부는…
그러니까 우리가 바로 그렇게 예수를 빼앗긴 날 내가 금식하는 자, 주려 죽는 죽은 흙의 자리로 내려가야 하는 자리인데 세상은 그날 잔치를 벌리더라는 거예요. 그러니 성도들아 너희는 어떻게 살아야 된다?
주려 죽는 삶 금식의 삶을 살아야 되는거에요.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가 신랑이 금식해 그러면 금식하는 거고, 먹어 그러면 먹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인류의 역사는 전부 아담 안에서 신랑의 역할을 하려는 자들의 교만으로 점철이 되죠.
아담의 그 범죄안에서 모든 인간이 여자고 남자고 남녀노소 할것없이 전부 신랑이 되고 싶어해요.
남자가 되고 싶어해요. 내가 쥐고 흔들고 싶어 한다라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의 역할이라니깐요.
그래서 하나님을 신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부는 그 신랑에 의해서 귀속이 되어지고 끌려가야 되는 거예요. 근데 전부 인간들이 신랑의 역할 남자의 역할을 할려고 한다 말이에요. 그게 아담이었죠.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살아야 하는 아담이 내가 남편 내가 신랑의 역할을 한번 해보겠다고 선악과 홀랑 따먹었어요.
가인 자기 제사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왜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 남자 신랑의 역할 해보겠다고 제사 옳게 드린 아벨을 죽여 버려요. 남자에요. 신랑이에요.
노아의 때에 바벨탑의 시대, 사사시대, 오늘날 까지 전부 모든 인간은 각자가 자기가 다 인생의 중심,
역사의 중심, 세계 우주의 중심이 되고 싶어해요. 남자가 되고 싶어해요. 신랑이 되고 싶어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 남자 육의 라인을 끊어 버리고 여자의 후손으로 교회를 창조하신다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여자의 후손으로 오는 거예요. 인간들의 그 죄된 본성, 육적 라인 남자 신랑의 라인은 끊어져 버리는 거예요. 인간이 할려고 하는 신랑행세의 행세의 라인은 끊어져 버리고, 여자 그냥 연약하고 때로는 부정한 자리로 몰리기도 하고 죽은 흙의 자리로 언제든지 내 몰리는 그러한 여자, 그러한 여자의 후손으로 교회가 오는 거예요. 예수가 바로 그러한 여자의 모습으로 이 땅을 먼저 살다 갔어요.
참 신랑이신 예수가 진짜 신부 여자는 어떻게 사는가를 보여주신 거예요. 그 참신랑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의 신랑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완전히 이 땅에서 목숨까지 버리는 여자의 삶, 신부의 삶을 살아내고 그 삶으로 우리를 초청하는거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교회를 성경이 여자라고 하는 거예요. 신부라고 하는 거예요.
왜 성경에 그렇게 여자와 남자의 차별 이런 것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지 아시겠죠?
그거는 남녀의 차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여자인 교회, 피조물인 여자는 하나님 앞에 신랑이신 남자인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 역할을 남자와 여자라는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그게 얼마나 안 되는지를 경험하는 거예요.
그걸 해보라는 게 아니라 그게 얼마나 안되는지를 경험하는 거예요.
창세기 3장 15절보세요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시고 갑자기 왜 여자가 나오냐구요. 여기에서 성경 전체는 그렇게 하나로 뚫려 있는 거예요.
그래서 신약을 모르고는 여러분이 구약을 절대 알아먹을 수가 없어요
마귀와 여자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원수가 되게 하신다라는 그 하나님의 복음이 지금 여기서 원시되고 있는데 그런데 어떻게 여자인 교회가 마귀의 원수가 되어서 하나님의 구원에 들어가게 되는가 하면
여자의 후손이 마귀의 머리를 밟음으로 성취가 된다 그래요.
그러니까 여자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여자가 나은 여인의 후손이 태어나야 되구요,
그 여인의 후손이 여자를 사망에서 건지게 되는 거예요.
제가 요 이야기를 갖고 족보로 끌고 갈거에요. 그러니까 성도는 이 세상에서 여자의 역할로 살다가 가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요한계시록 5장에 보면은 교회인 여자가 철장을 든 시편 2편의 철장을 든 예수를 낳는 대목이 나오잖아요
어떻게 교회가 예수를 낳아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교회를 낳는 거죠!
그게 무슨 이야기냐하면 여자가 교회를 낳는다는 건 여자 교회 인간은 “하나님 나는 무력한 존재입니다 나는 죽은 흙입니다.
하나님에 은혜가 없으면 안돼요 그러니까 하나님 저는 예수에 은혜가 꼭 필요해요.
그 십자가에 보혈이 저에게는 꼭 가입이 되야 돼요.
저는 예수 없으면 안돼요” 라는 이 낮아짐 죽은 흙으로의 낮아짐 처음 자리로의 그 낮아짐이 예수를 오게 하는 거 아닙니까? 그죠.
나는 이런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가 꼭 필요해요라는 그 고백 위에 예수가 오시는 거니까!
그러한 여자의 삶이 예수를 낳는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예수가 오셔서 여자의 후손이 세상을 밟고 그들을 건져 내시고 그들이 그 여자가 이제 예수의 금식이 뚫고 들어와서
그들을 찢어 발기므로 말미암아 진짜 낮은 자라는 것을 자각하게 하고,
그가 하나님의 은혜만 꼭 붙드는 그러한 작은 예수,
목숨까지도 내놓는 작은 예수가 되는 거예요. 그게 예수를 낳는 거예요.
또 그러니까 성도는 여자는 예수를 낳고 그 예수에 의해 구원을 받고 그 예수를 낳는 자
자기부인의 자리로 내려가서 결국 자기가 작은 예수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눈에…
그래서 내가 예수를 낳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삶을 사는 거예요.
내가 작은 예수의 자리로 가는 거예요.
진짜 신부의 자리로 가는 거예요. 진짜 그 여자의 자리로 내려가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여자가 그렇게 교회에서 홀대받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거예요. 그건 남녀 차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보세요
에베소서 5장 22절
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23.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게 잘 돼요? 안되잖아요.
25절 보시면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신 누구처럼 하라 그래요? 예수처럼.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기를 주신 진짜 참신부의 삶을 살다간 진짜 신랑 예수 그를 알게 되는 자들은
그 은혜 앞에 복종하는 자로 지어져가게 된다란 뜻이에요.
여자야 너희들의 삶은 바로 이거란다 이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그 역할을 맡고 위대한 그래도 그나마 그걸 할 수 있는 여자의 역할 복종하고 순종하면서 때리면 맞고 밖에서 설걷이 하고 있는데 안에서 불러갖고 자기는 테레비 보고 있으면서 재털이 그러면 갖다 주고 하면서 아 여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살다가는 구나를 배우는 거예요.
남자에게 시키지 남자는 그거 못해요. 그래서 여자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자 여자는 이렇게 차별이 있다 이게 아니라,
성도야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예수와 교회가 어떻게 연관을 맺고 살게 되는지 배워라라는 거예요.
그리고 너희 인간들은 신랑이신 하나님 앞에서 신부의 삶을 진짜 살아낼 수 없다는걸 배우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가르치지 말아라, 여자들은 조용해 해라 이런 내용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거예요. 가르치면 어때요? 말들 많이 하세요. 그러지 않아도 많이 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고작 이 세상에서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된다 그거 가르치실라고 성경에 그렇게 많은 구절들을 할애해서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이렇게 이런 이야기하셨겠어요?
사도 바울의 이야기
에베소서 5장 이야기 맨 마지막이 뭐예요? 크도다 하나님에 비밀이여! 내가 교회와 예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거다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신랑과 신부는 교회와 예수를 이 세상에서 설명하고 인간이 얼마나 신부로 여자로 살 수 없는 가를 폭로당하게 하기 위해 그렇게 나누어져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니까 결혼해서 너무 뭐 하나님 나라의 작은 모형을 이룰려고 강박관념갖고 애쓰지 마세요. 원래 안되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서 예수를 배우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디모데전서 2장 11절 보세요
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보세요. 여자에다가 교회를 넣어놓고 남자에다가 하나님을 넣어놔 보세요.
정확히 복음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자는 남자를 흔들면 안돼요. 그걸 이 세상에서 남자와 여자들이 한번 살아보는 거예요.
그런데 세상은 점점 어떻게 돼요? 여자들이 남자를 흔드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여자들이 남자 머리에 다 올라타 있어요. 당회 장로님들하고 목사님들하고 다 결정해 놓고요 그날 집에가서 목사님이 사모님하고 이야기하면 다 바뀌어요. 이게 웃을 일이 아니라 인간세상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국으로 치닫고 있다라는걸 배우라는 거예요.
인간은 여자로 신부로 못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돼요 신랑에게 의지해야죠.
신랑이 우리를 뚫고 들어와서 찢어 발기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찢김의 연속으로 점철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렇게 신랑에 의해 점점 주려죽는 자가 되어 점점점점 죽다가 나중에 결국 작은 예수를 쏙 낳고 부활의 몸을 입는거에요. 그게 그리고 천국가는 거예요. 성도는 이 세상에 그거 하는 거예요. 딴거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그 족보에 예수님이 태어나는 그 예수님의 그 족보에 수많은 남자들 사이에 여자들 다섯이 딱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 족보에 보면요. 여자들 이름 뒤에만 에게서란 단어가 붙어 있어요. ~에게서 ~에게서 거기에서 예수가 나왔다는 거예요. 성도의 여자의 삶, 신부의 삶에서만 예수가 나올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마태복음 1장을 보면요 1절이 뭐라 그래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의 세계라 그러죠. 헬라어 원어로 보면 다윗과 아브라함이에요. 다윗이 먼저 나와요. 뿐만 아니라 궂이 이 마태가 그 족보를 14대 14대 14대로 맞추죠. 그 14는 뭐라 그랬어요? 데이빗 다윗이에요. 다윗.
그때 당시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었기 때문에 히브리어 자음에 숫자를 넣어서 그걸 수로 썼잖아요.
그 데이빗 달렙이 4고 바우가 브이가 6이에요. 달렙 4 4 6 14죠. 그죠. 그러니까 다윗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족보가 처음부터 계속해서 다윗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수많은 왕 중에, 유일하게 다윗에게만 왕이란 이름을 붙여요. 다윗왕 이라고 붙여요. 나머지도 다 왕이였는데 다윗에게만 다윗왕이라고 붙여요. 그러니까 다윗에 끊임없이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여러분 사실 다윗과 바벨론 이거할때까지 왕 족보에서 네사람이 빠졌어요. 요람은 웃시아를 낳고가 아니라 요람은 아하시아를 낳고 아하시아는 요아스를 낳고 요아스는 아마샤를 낳고 아마샤는 웃시아를 낳고라고 해야 순서가 맞아요. 성경에 다 나온거거든요. 그런데 쑥 빼버렸어요. 그래놓곤 14대래요.
뿐만아니라 요시아는 여고니아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라고 되어있는 부분도 요시아는 여호야김을 낳고 여호야김을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느니라 라고 해야 빠진것이 없는 순서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은 다윗에서 바벨론 이거때 까지에서 왕 넷을 쑥 빼버리고 의도적으로 14라는 틀에 맞춰요. 그런데 잘 세보면 14대 15대 14대에요. 뺐는데도 그래서 마치 마태가 실수한 것처럼 보여요.
왜 이왕 뺄거면 하나 더 빼서 진짜로 산술적으로도 14로 맞추지 왜 14 15 14로 적어놓고 말로는 전부 14대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궁금해하지 않으셨어요?
여러분 열쇠는 다윗이라는 인물의 손에 쥐어져 있는 거예요. 좀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마태복음 1장의
그 족보는 다윗부터 시작해요. 거기다가 14라는 다윗이라는 이름으로 셋으로 나눠져 있고 다윗이라는 이름뒤에만 왕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어요. 여러분 이스라엘 민속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스라엘에게 메시아가 오셔서 무엇을 이루어주기를 원했어요. 이스라엘이 잘 생각해 보세요. 화려한 다윗왕국을 재건해
주기를 원했죠. 그리고 그들은 다윗왕이 갖고 있던 힘을 자기들이 갖기를 원했어요.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내셔서 그들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영생을 주려고 했는데, 민속 메시아사상 구약 헌 부대 묵은 술에 빠져있던 자들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이 세상과 나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종교행위와 선한 일 이런 걸 통해서 이 세상에서의 화려한 다윗왕국 우리가 이렇게 살면 메시아가 와서 화려한 그 다윗왕국을 재건시켜 줄거야라는 그러한 다윗왕이 가진 힘과 다윗왕국의 화려함이 자기들에게 주어질거라고 믿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다윗의 자손, 다윗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하나님은 그 다윗 아니라는 거예요. 그 다윗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라는 그 진짜 메시아가 오는 그 족보에다가 다윗을 확 부각시켜 놓고 그 다윗은 예수를 상징하고 모형하던 존재였지 절대 그 자가 가치있는 존재가 아니였고 그가 이룬 나라가 진짜 하나님 나라 내가 주려고 하는 그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 주기 위해 다윗으로 계속 폭격을 하는 거예요.
다윗 다윗 다윗 다윗 그러다가 결국에는 그 족보에서 다윗을 확 빼버려요. 다윗왕을 하나님이 그 족보에서 빼버리는 거예요. 다윗을 계속 강조하다가 이 다윗은 아니야 그럼 누구에요? 다윗이 모형하고 있었던 진짜 다윗 진짜 하나님의 메시아가 여기왔단다 하고 예수가 끝에 딱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다섯 여자에 대해서 제가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고 마칠께요. 보세요. 조는 사람 하나도 없이 이렇게 오랜시간을 집중하시잖아요. 성령이 임했다는 증거에요.
첫번째 여자가 누구죠 다말이잖아요. 다말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유다의 며느리에요. 하나님은 유다지파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실 것이다라는 것을 야곱의 유언에서 이미 말씀하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유다의 아들들이 차례로 죽어 버렸어요. 남자가 신랑이 죽어 버린 거예요.
하나님이 남자들을 기각시키는 것입니다. 유다는 시형제 결혼법에 의해서 막내를 다말의 남편으로 주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해 버려요. 안주죠.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의 라인이 끊어지는 거예요. 그런데도 남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막는 존재로 등장하는 거예요. 이렇게 예수님의 족보에서 남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방해하는 자로 등장하고 약하디 약한 여자가 창녀의 자리로 내려가서 안그래도 되는데 창녀의 자리로 스스로 내려가 유다의 후손을 생산해 내는 거예요. 다말이 창녀의 자리로 내려가서 그러한 시아버지와 간음을 하지 않았으면 그 언약의 라인은 끊어져 버리는 거예요.
예수가 이 땅에 창녀의 모습으로 오셨다는거 아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에요. 순결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 죄된 육신을 입고 인간의 세상에 내려 오셨어요. 그게 부정한 자리 창녀의 자리로 스스로 내려오신 예수님의 모습이에요. 그 예수님에 의해 끊어질뻔한 하나님의 그 언약 백성들 그 라인이 이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의 교회가 탄생되는 거예요. 누구에 의해 안그래도 되는데 창녀의 자리로 낮아진 그래서 아사해 버린 금식을 해버린 예수 여자 신부의 삶을 사신 진짜 신랑의 그 신부 노릇으로 인하여 그 여자노릇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 교회가 탄생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남자가 한 일은 뭐예요? 법을 쥐고 여자를 죽이려고 한거 밖에 없어요.
유다가 다말의 불륜사실이 밝혀지자 뭐라 그러죠? 율법을 들어서 불에 태워 죽여라 그러죠.
이게 바리새인과 예수의 모습입니다. 죽여라 이야기하는 거예요. 율법 안지키니까 죽여라.
남자 죄인들은 항상 법을 쥔자 자기가 선악을 판단하는 자로 서요. 그 자들이 하나님의 라인을 계속 막고 서는 거예요. 그런데 여자는 반드시 그걸 성취해 내는 거예요. 여자여 위대하도다. 그 역할을 여자들이 지금 이 약한 모습을 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온갖 불평등 압제 다 겪으면서…
두 번째 여자가 라합이에요. 라합은 지난주에 설명해 드린대로 하나님의 저주아래 놓인 가나안 여자입니다. 하나님의 덮어줌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한 함과 함의 아들 가나안 저주를 받죠.
그 함의 후예가 만든 나라가 어디? 애굽. 가나안의 후예가 가나안. 그죠. 그 애굽과 가나안 사이에 이스라엘이 끼어서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어떻게 해서 거기에서 나올 수 있는가? 하나님이 함의 후손 애굽을 어떻게 멸망시켜요?
어린양의 피로!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애굽의 장자가 다 죽죠. 장자는 남자를 대표하는 거고 남자는 가정을 대표하는 거고 전부가 다 죽었다는 뜻이에요. 상징적이지만 어린양의 피로 애굽이 세상이 죽고 하나님의 백성이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은혜로! 어린양이신 예수의 은혜로.
그럼 가나안은 어떻게 죽어요? 어린양의 역할을 한 기생 창녀 라합에 의해 죽어요.
그 약하디 약한 어린양 더러운 부정의 자리, 불륜의 자리 그 다말의 자리같은 그 창녀의 자리에 있던 라합이 그렇게 사고만 치는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그 남자를 창녀의 자리에서 살려내는 거예요.
자기를 죽일려고 오는 자기 나라를 파기하러 오는 존재는 자기를 죽일려고 오는 거예요.
자기를 죽일려고 오는 그 어떤 신에게 자기를 드리는 거예요.
자기가 속한 나라를 판다라는건 내가 죽는 거거든요. 내가 속한 것을 준다는 거는 내가 속한 나라를 팔아먹고 그 나라에 나를 좀 들어가게 해주세요!라고 이 세상을 팔아먹는 거예요.
율법 아래 오신 예수가 이 율법의 세상을 하나님께 팔아먹고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 창녀 라합에 의해 죽어야할 열두지파 교회가 구원을 받는 거예요.
이 여자가 고발하면 어떻게 돼요? 다 죽어요.
그러나 이 여자가 위험을 감수하고 나라를 팔아먹으면 자기의 심장에 칼을 꼽는 거예요.
내 나라를 팔아먹는 거니까, 내가 속한걸 팔아먹는 거니까 내 옛사람을 아사시키는 거예요. 그게…
그랬더니 열두지파가 거저 살아서 요단강을 건너 넘어오는 것입니다. 그게 복음이에요.
남자들은 사고만 쳤어요. 하나님은 거기서 또 죽이고 싶었을 거예요. 그쵸. 구세대와 신세대가 다른게 하나도 없었잖아요. 구세대는 다 죽었어요. 그런데 얘네들은 뭘 잘했다고 거기다 넣어주냐구요.
예수에 접붙여서 들어가는 거예요. 어린양의 역할을 한 라합에 의해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십자가의 사건을 거기서 또 한번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번째 여자가 누구예요? 룻입니다. 룻은 어디 사람이죠? 모압사람.
모압이라는 땅은 하나님에 의해 일찌감치 저주받은 땅이에요. 거기는 하나님이 버린 땅입니다.
한번 볼까요.
신명기 23장 3절
암몬 사람과 모압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10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영원히 그러한 저주 받은 나라 모압 여자 룻이 기생 라합의 며느리가 되는 거예요. 아주 콩가루 집안이에요. 아주 그냥. 그러니까 예수님의 족보가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그렇게 콩가루로 간다니깐요.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예수를 낳는 존재로 가는게 아니라 그렇게 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다윗의 할아버지를 낳는 거예요. 저주받은 나라에 이 여자가 이방인이에요. 라합 이방인이에요. 선한 사마리아인 이방인으로 오시는 개취급도 안당했던 이방인으로 오시는 그 선한 약하디 약한 사마리아인에 의해 구원받는 남자들 신랑행세하는 자들 그 그림을 보여주는 거예요.
여러분 나오미의 남편은 엘리멜렉이죠. 그 뜻은 나의 왕은 하나님이시다에요. 엘리멜렉 모든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요. 나의 왕은 하나님이래요. 그러나 결국은 자기를 섬긴다라는 걸 폭로당해요.
남자입니다 엘리멜렉 신랑 남자가 나의 왕은 하나님입니다. 너스레를 떨었더니, 하나님이 진짜 라고 물으셨어요. 어떻게 기근을 내렸더니 곰방 모압으로 이사갔어요. 저주받은 땅 모압으로 딴대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래 내가 니 왕이냐 니가 니 왕이냐? 어때 니가 니 왕이지 확인시켜 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두 아들까지 다 죽여 버립니다. 남자를 부정해 버리는 거예요. 인간세상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거예요. 그때에 나오미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로 각인이 될까요? 나를 괴롭히는 분.
그래서 자기 이름을 뭐로 바꿔요? 마라로 바꾸잖아요. 나를 괴롭히는 분이에요.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괴롭히는 분이라는 생각을 혹시 한번도 안해 본 분 계세요? 그 사람이 가짜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괴롭히는 분으로 오셔야 돼요. 여러분을 굶겨 죽여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음의 현실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기 위해서에요. 그런데 나를 괴롭히시는 그 하나님에게 어떤 여자 이방여자가 자기 몸을 던져 버리는 거예요. “당신의 하나님 어머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다” 그걸 무슨 효도 설교할때 자주들 쓰는데 그 라인으로 이방여자가 뛰어 드는 거예요.
나를 괴롭히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에 의해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어요. 그죠? 그런데 그 괴롭힘의 십자가를 지는 거 공생애 삶을 사는거 다 괴롭힘이에요. 거기에 자기 몸을 던진 여자 신부의 삶 왜 나는 죽은 흙이니까 남편에게 귀속된 존재니까 남편이 하라는 대로 해야 되니까 순종한 거예요. 죽기까지. 그 여자에 의해 언약의 후손이 태어나는 거예요. 예수! 아닙니까 여러분 그게 예수.
네번째 여자가 밧세바죠. 그런데 그 족보에 밧세바라는 이름이 안나와요. 우리야의 아내라고 나와요.
왜 궂이 밧세바라는 이름을 쓰면 더 편할텐데 우리아의 아내라고 했을까요? 한번 볼까요.
1장 6절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에게서 나오죠. 그죠?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밧세바라는 이름 안에 우리아의 삶이 들어있다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밧세바라는 거 다 아는데 일부러 우리아의 아내라고 쓴거에요. 우리아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여기에서 다윗이 빠지는 거예요. 잘 보세요. 여자는 하나인데 남편이 둘이 등장하죠. 다윗과 우리아 둘중에 하나는 빠져야 돼요.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임신을 시켜요. 그런데 그렇게 태어난 아기는 곧 하나님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그럼 태어나질 말게 하지 왜 태어나게 해놓고 죽여요?
다윗은 그 일로 인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죄 사함의 비밀을 알게 돼요. 분명히 나단이 왔을때요 하나님은 너를 용서하신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전제를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용서를 하신다고 했는데 그러면 용서를 해 주셨으면 아이가 안죽어야 되잖아요. 아이가 죽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용서야 그렇게 되야 되는데 다윗이 거기에서 시편 51편을 쓴단 말입니다. 다윗이 나단을 만난 다음에 시편 51편을 쓰는데 그중에 몇 구절 볼까요.
시편 51편 7절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정결한 마음 내게 주소서 나는 이렇게 악당입니다 내가 모태에서 부터 죄인입니다. 그러더니 나를 정결케 해주세요.
아 하나님은 나를 정결케 하실 거예요. 그래놓고 뭐라 그러냐하면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꺽으신 뼈로 즐겁게 하소서에요.
여기서 꺾으신 뼈가 누굽니까? 우리아와 아기잖아요. 죄는 다윗이 지었어요. 율법에 의하면 다윗의 뼈가 꺾여야 돼요. 그런데 하나님이 다윗 대신에 죽어야 할 다윗 대신에 왜 그는 그냥 택함을 받았다는 이유밖에 없어요. 죽어야 할 다윗 대신에 하나님의 전쟁 성전을 치르고 있던 장수의 뼈를 꺾어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그의 죄의 결과물 다윗과 밧세바의 불륜의 결과물이 된 아기. 그 죄의 결과물이 되어서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용서받는 거구나를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얘들아 잔치하자 아기가 죽자마자 잔치를 벌이는 거예요. 먹자 그게 혼인잔치입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 구원은 그렇게 다윗이 금식하고 살려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율법에 의해서 주어지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다른 어떤 자격있는 존재의 뼈가 꺽여짐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그 은혜의 현실을 여기에서 보여주는 거예요.
그 밧세바가 바로 그 우리아와 아기를 다 품고 있는 존재에요. 멀쩡한 여자가 이 다윗이라는 존재를 살리기 위해 불륜녀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리고 이 불륜녀에 의해 예수의 라인 언약의 라인인 솔로몬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세요.
솔로몬의 아버지가 우리아입니까? 다윗입니까? 잘 생각하셔야 돼요. 여러분.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때 하나님이 그 언약의 라인을 거기서 끊을 수 가 없으니까 셋이라는 아들을 주세요.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주신 아들이다 그러죠. 그러니까 셋은 아벨의 라인을 대신 채운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셋은 아벨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언약의 라인으로 이어지는 거거든요.
마찬가지로 죄인인 다윗은 죽어야 돼요. 마땅히 죽어야 돼요. 그는 예수 안에서 죽어야 되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의 역할을 누가 하냐면 우리아가 하는 거예요. 그 다윗이 되어 우리아가 대신 꺾여서 죽고 성전을 치르던 장수 우리아가 죽고, 그 우리아와 그 아기가 죽고 그리고 이 다윗에 의해서 한 아기가 예수님의 언약의 라인이 탄생이 되는데 그러면 이 다윗은 지금 죄인 다윗이에요. 구약의 그 관점으로 봤을 때 그 인간적인 죄인 다윗이에요.
조금더 제가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릴게요. 여러분은 죽어야 할 여러분 대신에 예수가 죽었어요.
그러므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살아났습니다.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탄생됐어요. 여러분이 탄생됐단 말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작은 예수로 하나님에게 여김을 받죠. 하나님은 예수라는 안경을 통해서만 당신의 백성을 봐요. 그래서 우리를 다 예수로 여겨주셔서 아들이라고 부르시는 거거든요.
그렇죠? 그러니까 예수가 나 대신에 죽으셨는데 내가 그 예수의 자리로 들어가게 되는 거죠.
우리아가 다윗 대신에 죽었어요. 다윗은 이제 우리아화가 되는 거예요. 옛 다윗은 죽는 거예요.
구약의 다윗 왕은 죽는 거고, 이제 예수를 상징하고 모형하고 있던 우리아가 되어 솔로몬이 나는 거예요. 평화의 왕 샬롬 예수를 모형하는 솔로몬이 나오는 거예요. 그 라인에서 예수가 나오는 거란 말입니다.
바로 그러한 방법으로 예수가 온다라는 걸 설명해 주기 위해 거기에 다윗과 우리아가 둘이 들어가는 거예요.
너희들이 다윗왕 다윗왕 다윗왕 다윗왕 여태 다윗왕 기다렸잖아! 그게 유대인들의 로망아니었습니까? 전세계 남자들 죄인들의 로망이 다윗이었단 말이에요. 다윗왕. 그가 가진 권세 그가 가진 나라의 힘 화려함 그런데 그 다윗이 어떻게 해서 이 라인에 들어갔는줄 알어? 이 우리아 때문에 들어간 거야!
그래서 이 우리아가 대신 죽고 다윗은 우리아화 예수화 되어 구원받은거야! 그런데도 다윗을 기다려?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 다윗 다윗 다윗 하다가 거기서 다윗을 확 빼는 거예요. 솔로몬은 우리아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아들이 되는 거예요. 예수의 후손이 교회가 된 것처럼…
그런데 우리아는 죽었잖아요. 다윗과 우리아가 확 빠지면 14대가 되는 거예요. 바로 그렇게 교회는 없음의 자리, 죽은 자리에서 우리아가 솔로몬이라는 언약의 후손을 낳은 그 원리대로 없음처럼 보이는 성령에 의해 예수가 태어나는 그 사건을 거쳐 성령에 의해 교회가 태어나는 거예요.
인간의 어떤 육적 방법 노력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어떤 도덕 윤리 이런 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교회가 탄생하는 거예요.
다섯번째 여자가 누굽니까? 마리아에요. 마리아는 성령에 의해 없음을 상징하는 그 존재에 의해 잉태를 해요. 예수를 잉태한다 말입니다. 그때 남자 요셉 남편은 뭘 했어요? 종용히 끊고자 하여 끊어지면 안되는 거예요. 남자는 이렇게 계속 끊는 자로 등장하고 여자들은 계속 잇는 존재로 등장한다 말입니다.
그 마리아의 희생에 의해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 왜 그때당시의 미혼모는 돌에 맞아 죽어야 되는 거거든요. 그 희생에 의해 예수 안에 담겨 있는 교회가 탄생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됐고 교회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라고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14 14 14 이게 완전수라면 7 7 7 7 7 7 7이 하나 더 있어야 되는데 7 7 7 7 7 7 여섯개 밖에 없잖아요. 14 14 14 니까 그러니까 고 마지막 마지막 7은 뭐예요?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 안에 들어있는 교회가 일곱번째 세대인 거예요. 그래서 완전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 나라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성도는 이 땅에서 신부로 여자로 살아가야 되는 거예요. 남편을 빼앗기는 그 자리 십자가의 자리에서 내가 죽는 내가 금식하는 아사하는 자리로 가는 것이지, 남편의 십자가 앞에서 병고쳐주세요. 돈주세요. 명예 주세요. 문제 해결해 주세요. 이따위 것 요구하는게 아닙니다. 그들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고 바리새인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저의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 있고 저의 사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일 뿐입니다. 하나님 이렇게 죽은 흙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해주신다니 그냥 감사할 뿐이에요.
아 그런 하나님 빨리 만나고 싶네요. 이게 성도의 삶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결론으로 베드로후서 3장 18절 읽고 마치겠습니다. 다같이 읽어 볼까요.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누구에게? 오직 은혜와 예수를 아는 데에 자라가는 자가! 따른거 말고 은혜와 예수를 아는데 자라가는 자만 은혜와 예수를 안다라는건 나는 은혜를 받아야할 죽은 흙이군요를 인정하는 자, 자기부인하는 자 그 자리로 내려가는 자만 영광속에 거하는 거예요. 그 자리로 가십시다. 여러분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