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도 여러 난제들이 나온다. 그중 최대 난제 중 하나가 마가복음 11장 12-22절 내용이다.
경험상 이 본문은 난제 정도 아니라, ‘불가해제’에 해당된다고 본다.
도무지 풀 수 없는 숙제란 말이다. 문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막 11:12-14)”
뭐가 문제일까?
예수께서 시장하셔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에 과실이 있을까 해서 가셨더니,
잎사귀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무화과나무에 다시는 열매가 맺지 못할 것이라 저주하셨다.
문제는 아직 그 무화과나무가 열매 맺을 시기가 아니었음에도,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예수께서 그 나무를 저주하셨다는 점이다.
가을 추수 때가 아니라 아직 봄인데, 예수께서 열매를 기대하신 자체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에 이스라엘 농산법을 잘 관찰한 베일(Bale)이라는 학자가 자신이 발견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는 무화과나무에 잎사귀가 있으면 반드시 열매가 있다는 점과,
가을에 충실한 열매가 열리는 게 정상이지만 3-4개월 전에 조기에 맺히는 열매도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 잎사귀가 달려 있음을 보시곤 조기에 맺히는 열매를 기대하셨다는 것이다.
그리 설명하니, 본문의 난제가 해결되는 듯 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무화과나무의 때가 아니다”란 구절이 이 해석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만다.
제철이 아니었기에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리지 않았음에는 문제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째서 예수께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긴 세월 동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도 않게 기적은 쉽게 다가왔다.
양지에 위치한 총신대 신대원에 강의를 갔다가 이 문제가 풀리질 않아 고민하다,
처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해가 되질 않는 본문을 시원하게 깨우치게 해달라고 말이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은 그동안 내가 풀어보고자 집중해왔던 ‘무화과나무의 열매’에서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로 시선을 옮겨버리셨다.
순간 그렇게도 풀리지 않던 난제가 단숨에 해결되고 말았다.
본문을 해석하는 이라면 누구든지 무화과나무의 열매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본문은 무화과나무의 열매에 초점을 맞추어선 절대 풀리지 않는 내용임을 알아야 한다.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로 주의를 옮겨야 명쾌하게 해결이 되는 본문이다.
무화과나무의 특징 중 하나는 열매가 있으면 반드시 잎사귀도 있음을 뜻한다.
바꾸어 말하면, 무화과나무에 잎사귀가 있으면, 어김없이 열매가 있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는 아직 결실의 계절이 아니어서 열매가 없는 상태라 본문이 언급한다.
그렇다면 잎사귀는 어때야 했나?
잎사귀 역시 없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나무는 열매가 없음에도 잎사귀만 무성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책망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열매가 없음에도 잎만 자랑하는 이스라엘의 ‘외식’(Hypocrisy)을 지적하셨단 말이다.
이어서 나오는 성전청결 사건 역시, 같은 주제인 ‘외식’을 지적하신 내용이다.
때문에 이 두 사건은 다음과 같이 ‘샌드위치 기법’으로 기록되어 있다.
A. 무화과나무 사건1
B. 성전청결 사건
A’. 무화과나무 사건2
성전은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장소이다.
그런데 기도와 예배엔 관심도 없이 돈 바꾸는 일을 통해 이윤을 남기려는 이들이 거기 있었다.
이들이 바로 ‘외식’하는 자들이다.
때문에 ‘외식’이란 공통 주제를 지닌 무화과나무의 사건이나 성전청결 사건을 차례로 소개한 후,
‘외식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20절을 통해 결론적으로 보여준다.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점” 말이다.
그렇다.
외식의 결과는 무서운 저주와 심판이다.
수직적 사고로는 풀리지 않던 난제를, 하나님은 수평적 사고를 통해 아주 쉽게 풀어주셨다.
그 때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제부터 내 삶에서 외식이란, 모양조차도 존재하지 않도록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신성욱 교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고문,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
